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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초기에는 국운이 강성해서인지는 몰라도 왕자들도 많이 태어나 “왕자의 난”을 겪기도 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왕자들이 태어나지 않아 왕위계승에 애를 먹어 양자를 입양하는 편법으로 어렵사리 왕위를 이어 가다가 제24대 헌종에 이르러서는 아예 왕실의 직계 혈통이 단절되고 말았다. 헌종이 급작스럽게 승하하여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것이다. 왕실에서는 헌종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찾기 위해 왕실 족보를 샅샅이 뒤진 끝에 찾아낸 인물이 바로 19살 강화도령 이원범이었다. 이원범은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양제 임씨 사이에서 태어난 은언군(恩彦君) 이인(李禛)의 손자로서 사도세자의 서손 증손자였다. 그러나 이원범은 왕위를 계승하기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이원범의 이복형인 이원경(李元慶)은 헌종10년 정부에 불만을 품은 이원덕, 최영희, 민진용 등이 그를 임금으로 추대하려는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었고 이로 인해 이원범 역시 친족들과 함께 강화도로 격리되어 살게 되었다. 왕위를 이을 정통 후계자가 있었더라면 왕위는 고사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숨도 쉬지 못하고 엎드려 있어야 할 인물이 일약 국왕에 등극하는 드라마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역적의 이복동생이 나무꾼에서 국왕이 될 수 있었을까?. 거기에는 권력과 연결된 막강한 배후세력이 작용했었다. 조선왕조 성군으로 추앙받던 정조는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자 나이 어린 세자를 보호하기 위해 측근이었던 김조순과 사돈을 맺고 세자의 장인으로 삼았는데 정조 사후 세자였던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임금의 장인이 된 김조순은 조정을 좌지우지하면서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순조 이후 헌종까지 권세를 휘두르던 안동김씨 세력들은 헌종이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자신들이 다루기 쉬운 강화도령 이원범을 왕위에 올리고 역적 가문이라는 핸디캡을 없애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순조의 아들로 편입시켰고 역적으로 거론된 이원범의 가문을 사면하고 첩이었던 이원범의 어머니 염씨의 신분을 상승시켰다. 이를 위해 일성록(왕의 일기), 승정원일기(지금의 대통령비서실 기록) 등을 함부로 손대는 신분세탁과 기록조작을 했다.
철종이 제위에 오른 지 1년이 지나자 이들은 자신들의 정권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전국에 금혼령을 내리고 철종의 아내를 맞아들이는 중전간택을 시작했다. 왕손이 귀한 조선왕조에서 왕위를 이을 왕자를 얻는 것은 시급한 일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중전간택이 진행되는 동안 철종의 얼굴은 나날이 어두워져만 갔다. 철종에게는 강화도 나무꾼 시절 사랑을 약속한 연인이 있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봉이였다. 나무꾼 시절 천민의 딸인 봉이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느닷없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첫사랑과 생이별을 하고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하고 있다가 다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야사에 의하면 안동김씨 가문에서 봉이를 죽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지엄한 군주의 첫사랑 이야기가 민간에까지 퍼졌다는 것은 왕권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조선 시대 군왕은 스승을 두고 엄격한 군왕수업을 받으면서 군주의 자질을 키웠는데 철종은 아무런 군주수업을 받지 못하고 왕위에 올랐다. 군왕으로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철종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오직 당시 섭정을 했던 안동김씨 가문의 순원왕후가 시키는 대로 꼭두각시 군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철종에게도 군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순원왕후가 3년간의 수렴청정을 거두고 철종이 친정에 나서게 된 것이다. 강화도에서 천민들과 함께 살아온 철종은 누구보다도 백성들의 곤궁함을 잘 알고 있기에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개선하기 위해 세도정치에 저항하다가 유배를 당한 이들을 사면하고 세력화하여 개혁정책을 시도하였으나 견고한 안동김씨 세력의 반대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무력한 현실 앞에 모든 의욕을 상실한 철종은 진정한 국왕이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후계자도 남기지 못하고 승하하고 말았는데 그의 나이 불과 서른셋이었다.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면 강화도 나무꾼으로서 첫사랑 봉이와 함께 아들딸 낳고 오손도손 행복한 삶을 살았을 한 젊은이가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들에게 떠밀려 인간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역사를 살펴보면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면서 욕심 없이 착하게 살아가는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