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넘치는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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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넘치는 세상에서

申祉浩
전 영암초등학교 교사
경기도 율동초등학교장 퇴임
현 한국문인협회 회원
‘고운 말을 쓰자’, 내가 학교에 재직하던 시절 학생들에게 주간생활목표로 자주 사용하던 덕목이다. 그것이 지금 새삼스럽게 절실해진다. 우리 주위에 듣기에 거북한 거친 말들이 아무렇게나 나다니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TV에서, 파렴치범들이 태연하게 내뱉는 상식이하의 말, 정가에선 국민들의 비위에 맞추려는 속 보이는 말,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섬뜩한 북한의 막말 등 마음이 심란해지는 말의 난장이다.
거리 공원 시장 전철 속,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자기와 생각이 안맞는다고 몰아붙이고, 자기가 더 잘 나고 싶어서 남을 비방하거나 빈정대는 말,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상스러운 욕설도 들린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에서는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말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난무하기도 한다.
말로 인한 정신적 피해가 심각하다. 사회가 빠르게 발전할 수록 대인관계에서 스트레스가 많게 된다는데 주로 말이 원인이란다.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의 저자 샘 혼 여사는 사이버세계에서는 언어폭력이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가해자는 터무니없는 욕설과 비방으로 남을 괴롭히고 약점을 들추어내서 골탕을 먹이고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얼마전 관악산 입구에서 ‘선플달기캠패인’을 벌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지금 사이버 왕따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되고 있단다. 악플을 달아서 상대방을 괴롭히는데 그것을 받는 사람은 정신적 충격으로 고통이 말할 수 없이 크단다.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인터넷이 발달하고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다는데 악플에 시달릴 위험도 클 수밖에 없다. 많은 정보를 얻고 많은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좋은 면의 이면에는 이와같이 비뚤어진 악플의 세계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소리에 대꾸하지 말라. 너도 같은 사람이 되리라’ 성경의 잠언에 있는 말이다. 남의 하찮은 소리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지혜를 가지라는 말이다. 악플의 시달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많다. 모두 이름값이 있는 사람들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쉘 여사도 흑인, 거구, 말괄량이라고 악플의 놀림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더욱 밝은 모습으로 멋진 활동을 한다고 한다.
사람은 서로 대화를 하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대화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어려서부터 토론식 대화를 가르치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대화방식에 익숙치 못하다. 서로 대화를 나눌 때 내 의견을 앞세우려 하며 말꼬투리를 잡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 가끔 생활형 분노로 사건이 일어나곤 하는데 감정충동조절과 온건한 대화에 익숙지 못한 우리 문화에서 기인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제일이라는 말이 있다. 옳고 그름이나 공정성을 떠나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다. 남의 의견은 들어보나 마나 내 생각이 옳다고 단정해버리기 때문이다.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면 거부반응이 생기고 무리와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의 기질상 ‘욱’하는 성질이 문제이기도 하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이성을 잃고 한 마디 내뱉는다. 그 한 마디가 공정한 말이 아닐 것은 뻔하다. 한 번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실언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사람은 말이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 고도의 문명을 이루게 된 것도 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언어사용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필수요건이다. 그러기에 언어생활을 바르게 하면 바른 사회가 될 텐데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기에 세상은 시끄럽게 된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속담에는 유독 말에 대한 것이 많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등.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한 속담들이지만 속담에 담긴 참뜻을 우리는 얼마나 마음에 새기고 있는지. 삶의 연륜이 쌓여갈 수록 나는 말에 대한 경건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말 한 마디를 언제나 신중하게 해야겠다는 책임감이다.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해야 똑똑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말이 많은 것은 쓸만한 말은 별로 없을뿐더러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해악이 된다.. 현명한 사람은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줄 안다. 침묵을 통해 여과과정을 거쳐 ‘참말’만을 하기 위함이다. 불가의 가르침에 ‘口是禍門’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재앙은 입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삶의 과정에서 가끔은 실수를 할 수가 있다. 본의 아니게 실언을 하기도 한다. 그때 잘못한 것을 남에게 들어내기 싫어서 어물어물 넘기다 보면 더 어색한 분위기가 된다. 화술의 전문가이고 컨설턴트인 존 케이도가 펴낸 ‘한 마디 사과가 백 마디 설득을 이긴다’는 책에서,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당당하게 신뢰에 찬 관계로 이어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 마디 사과의 위력이다.
세상을 훈훈하게 하는 것은 말의 힘이다. 작년 런던올림픽에서 박태환 선수의 말을 잊지 않는다. 100m 결승에서 어처구니없는 실격 판정을 받았을 때 우리 국민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아무 말 없이 퇴장을 했고, 다음의 400m 경주에 밝은 얼굴로 나와 은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억울해 했지만 그는 담담히 말했다. ‘최선을 다 했다. 그리고 오늘의 결과에 만족한다’라고. 그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분위기에 맞는 말을 하는 것, 아름다운 말을 하는 것은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아침이슬처럼 가슴을 촉촉하게 한다. 이슬은 양이 많지 않지만 식물에는 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이슬처럼 자양이 되고, 우리 가슴에 따뜻한 여운이 남는 말이 아쉬운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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