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닦아 자식 둘 대학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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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닦아 자식 둘 대학 보내

영암읍 구두병원 정남기씨

자식들 가르치느라
‘힘들다’는 것 잊고 살아
젊은시절 수제구두 ‘장인’
‘구두병원 원장님’이라 불린다.
영암읍에서 구두를 싣는 분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다정한 우리 이웃이다. 영암읍 역리에서 구두 수선방을 운영하는 정남기(52)씨.
종일 구두를 닦는다. 가끔 수선도 한다. 정씨가 영암읍에서 구두를 닦아온지 올해로 6년째. 구두를 보면 그 구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안다.
읍내 관공서를 차례로 돌아 구두를 가져와 닦아 다시 가져다 준다. 핸드폰으로 구두 닦아달라고 전화를 해오는 열성 팬도 있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또 많은 사람이 그를 알아본다.
부인 배복순(46)씨가 일을 돕는다. 정씨가 구두를 가지러 간 사이 부인 배씨가 남아있는 구두를 닦는다.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자식들 키우는 재미로 살았지라”
힘들어도 자식들 가르치느라 ‘힘들다’는 건 잊고 살아야 했다. 1남 2녀를 학교 보내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큰 딸이 대학교 4학년, 둘째가 올해 대학에 갔다. 집안에 대학생이 둘이라 더 열심히 벌어야 겠다고 말하는 정씨 부부.
영암읍 역리에 두평 남짓한 작은 ‘구두병원’을 마련한 건 지난해 가을 일이다.
6년전 농협군지부 옆 작은 구두병원 박스를 인수하면서 영암과 인연을 맺었다. 5년간 작은 박스 안에서 두 부부가 수 만 컬레의 구두를 닦았다.
비가 올 듯 쌀쌀해진 오후 시간이지만 구두를 닦는 두 부부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하루 평균 50켤레의 구두를 닦는다고 했다.
“겨울 추운 날에도 땀이 흐릅니다. 힘들어서 하루에 50켤레 이상은 못 닦아요” 무더운 여름에도 선풍기 하나로 버텼다.
일하는 만큼은 오로지 ‘성실함’으로 전념했고 ‘꼼꼼함’으로 인정받았다. 힘들고 궂은 일이지만 작은 구두 한 켤레를 닦는데 온 정성을 쏟으며 꼼꼼하게 최선을 다했다.
깔끔하게 닦아온 구두를 보고 손님들이 답례하는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한마디에 흐뭇하다.
정씨가 살아온 이야기기를 들어봤다. 나주가 고향인 정씨는 적지않은 다양한 일을 해봤다. 대형자동차 운전면허를 보유하고 다양한 차량 운전을 했다. 덤프트럭, 크레인, 버스 등. 7년전 교통사고를 당해 수 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고 난 후 자동차 운전에 염증을 느끼고 그 일을 포기했다. 부식가게도 경영해봤다.
새로운 일거리를 찾는 중 생활정보지를 보고서 지금의 일을 찾았다.
그러나 정씨가 본래 구두와의 인연이 없었던건 아니었다. 젊은 시절 수제화를 만들었다. 그는 기성화가 등장하기 전 모두 수제화를 신던 시절에 잘 나가던 수제화 장인이었다.
때문에 구두와 가죽에 대해서는 ‘전문가’다. “구두와 가죽을 더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세심하게 닦지요”라는 정씨.
정씨 부부는 “아이들 모두 대학 졸업하고 나면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싶다”고 소박한 꿈을 말했다.

/변중섭 기자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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