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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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약속은 약속이다?

어제(2월 24일)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연합(신당)의 기초 선거 ‘무공천’ 방침을 발표했다. 환영한다.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왜 우리 민주당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인지…
작년 4·24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도 무공천을 전격 결행한 바 있다. 가평과 함양 두 곳 군수 선거와 서울 서대문, 경기 고양, 경남 양산 등 기초 의원 선거에 “대선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정치 쇄신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한다는 차원에서 무공천을 최종 확정했다.” (당시 서병수 사무총장)고 발표했다. 일부 최고위원들로부터 “새누리당만 공천을 하지 않으면 자살행위”라는 반발이 있었지만, 무공천했다. 그때도 나는 새누리당의 개혁 의제 선점이 부러웠고, 우리가 부끄러웠다.
그때(작년 4월 1일) 서병수 사무총장은 민주당과의 사무총장 회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정당공천 폐지를 위한 법제화 논의를 위해 이른 시일 내에 사무총장 회담 개최를 민주당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때 민주당 비상대책위는 이런 새누리당을 ‘정치적 쇼’라고 비난하면서 이 제안을 어물쩍 외면 일축해버렸다. (정당공천 폐지에 대한 민주당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민주당이 새누리당 제안대로 선거법 개정에 나섰더라면 그때 정당공천제를 폐지시킬 수 있었고, 여야 모두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도 있었다. 우리 민주당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어제 주요 일간지에는 민주당도 (새누리당처럼) 정당공천을 할 거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당 지도부의 말을 인용해서 “민주당도 정당공천을 하기로 사실상 결정했다. 최고위원회의 최종 논의만 남겨놓고 있다” 는 내용들이었다.
한심하고 맥빠지는 일이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가동중이고, 거기서 새누리당더러 대선 공약을 지키라며 압박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 지도부는 민주당도 공천하기로 했다며 이를 언론에 흘린다. 도둑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
공천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론을 아주 이해할 수 없는 바 아니다. 새누리당에게 어부지리를 줄 수도 있고, 대규모 탈당 러시로 당의 조직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 ‘합리적 우려’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4.24 선거를 앞두고 무공천 방침을 확정했을 때, 새누리당 내에서도 그 같은 합리적 우려가 높았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그 합리적 우려를 딛고 힘든 정치적 결단을 선도했었다. 안철수 신당에도 자신들만 무공천했을 경우에 대한 합리적 우려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합리적 우려를 딛고 어려운 정치적 결단을 국민 앞에 제시했다. 왜 우리 민주당은 이렇듯 번번이 합리적 자기 계산에 굴복하고 마는 것인가?
유불리를 따질 일이 아니다. 당리당략적 손익계산 이전의 문제다. 지난 대선 때 국민 앞에 약속했던 일이다. 작년 7월 25일 민주당 전(全)당원 투표를 통해 당론으로 최종 결정했던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줄기차게 그리고 끈질기게 새누리당과 청와대더러 대선 때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하고 공격해왔다. 그런 우리가, 이제 와서 새누리당이 약속을 안 지키니까 우리도 지킬 수 없다고 나온다면, 우리들은 무엇이 되는 것인가? 국민과 언론은 우리를 뭘로 보겠는가?
손학규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민주당만이라도 약속대로 무공천해야 한다고 밝힌 것에 박수를 보낸다.
문재인 전 후보의 침묵을 이해할 수 없다. 그분이야말로 정당공천을 폐지시키겠다고 공약했던 장본인 아닌가? 민감한 사안마다 당론과 상관없는 자기 입장을 잘도 발표해오던 문의원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의 침묵만 비난받을 일이고, 문재인 전 후보의 침묵은 감싸줘야 하고, 눈감아줘야 하는 것인가?
개혁과 쇄신과 혁신을 위해선 손해볼 수도 있다. 아니, 손해보는 것이 개혁이고 쇄신이고 혁신이다. 당과 국회의원들로서야 손해지만, 국민들 보시기에 좋은 거라면 하는 거고, 가는 것이다.
기초단위 (시장·군수·구청장과 시·군·구의원) 선거가 민주당의 운명에 결정적이라는 가정에도 동의할 수 없다. 기초 선거는 기초 선거다. 서울 25개 구청장 중 19개를 석권하고 있는 민주당이 총선, 대선에서 연거푸 완패한 것이 그 뚜렷한 반증이다.
민주당은 지방자치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지방자치에서 손을 떼는 일, 그것이 이 시대 정치권에 주어져있는 최우선 과제다. 민주당이 이 과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나는 민주당원으로서 민주당에게 이 과제 선도를 요구한다.
한국의 지방 자치가 제대로 되려면 ‘2개의 중앙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필수적이다. 중앙정부와 중앙당이 그것이다. 한국의 중앙당들은 적어도 기초 지방자치에서만이라도 손을 떼주어야 한다. 그래야 지방이 살고,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글로벌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기초단위 정당공천 폐지는 이런 철학 정신에 닿아 있다. 민주당이 개혁과 혁신을 얘기하면서 정당공천제로 복귀한다면, 한 입으로 두 말 하기이며, 국민과 지방자치 역사 앞의 위선이다.
제발 우리 민주당, 이번만큼은 자기쇄신과 자기손해의 모범을 보이자. 제발 손해 좀 보자.
약속은 약속이다. 국민과의 약속은 더욱 그러하다. (2014년2월25일)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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