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세 고2 ‘왕언니’ 조영남씨 향학열 활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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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세 고2 ‘왕언니’ 조영남씨 향학열 활활

‘치매예방에 좋다’ 자식들 성화에 고교에까지 진학

군서면 서구림리 신흥동마을 조영남(74·여)씨는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왕언니’다.
그가 다니는 학교는 어르신들이 못 배운 한을 푸는 목포제일정보중·고교(교장 김성복). 자식들의 성화에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에 진학해놓고 보니 하루 하루 일과가 오지고 재미지다.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들은 다 객지로 떠나 마을 노인정에서 소일하던 그에게 자식들은 문안전화를 할 때마다 공부할 것을 권했다. “정신 통일하고 치매 예방하는 데는 공부가 제일”이라며 “제발 일 좀 그만하고 공부하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자꾸 권유를 받다보니 그 말에 힘을 얻었다. 중입검정고시에 도전해 두 해만에 합격하고 내친김에 목포제일정보중학교를 졸업했다.
공부를 계속한 김에 고등학교에까지 입학하라는 자식들의 말에 “중학교만도 감사한데 뭐 고등학교까지 가겠냐? 내 나이가 몇인데”라며 속마음과는 다른 말을 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노인정에 다니다 지난해 자식들의 뜻에 못 이긴 척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졸업을 앞두고 있다.
고등학교에 재학하다보니 자식들이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정신 통일에 그만이고, 치매 예방을 위해 공부하라던 아들은 이제 대화를 하다가도 “모른다”고 하거나 말문이 막힐 때면 지체 없이 “엄마, 고등학생이 그것도 모르세요?”라며 놀려댄다.
조씨의 나이 올해로 74세. 같은 동네 어르신들이 노인정에 모여 10원 내기 화투놀이로 하루를 보낼 때 조씨는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향한다.
오전 8시45분에 시작하는 1교시에 늦지 않기 위해서는 군서면 서구림리 3구 신흥동마을 집에서 7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따르릉, 따르릉” 울리며 자전거를 타고 산모퉁이를 돌고 논두렁 밭두렁을 지날 때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군서면파출소 안 뜰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군내버스를 탄다. 독천에서 다시 500번 버스를 타고 목포제일정보중·고교 앞에서 내려 건널목을 건넌다. 신바람이 난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걸음 빨리 건너 손짓하며 어서 오라고 부른다.
“이 과목은 이 과목대로 재미지고, 저 과목은 저 과목대로 재미져요. 그래서 학교에 다니는 것 같아요.”
연신 싱글벙글인 조씨를 만나는 사람들은 “뭐가 그리 좋아 웃고 다니냐”고 묻는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할 것 다 해봤다. 갈 때도 다 가 봤다. 부러울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다”고. 실제로 조씨는 그렇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있고, 수학여행도 가보았고, 현장체험학습도 다 다녀봤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즐겁다.
조씨는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의 7남매 가운데 큰 딸로 태어났다. 이 때문에 살림밑천이 되어 초등학교도 다닐 수 없었지만 부모님은 늘 야학에 다니라고 권했다. 그 덕에 어머니가 시멘트 종이를 잘라 밥풀을 붙여 만들어준 공책을 끼고 야학에 나가 한글을 익힐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도 못 다닌 학력이지만 한 평생 글을 몰라 고생하지는 않았다. 생각할수록 부모님이 고맙고 감사하다. 지금 고등학교 2학년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것도 어린 시절 부모님 덕분에 다녔던 야학공부 덕분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들은 객지로 떠나 홀로 산지 오래지만 조씨는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학교에 갈 생각에 기분이 좋다. 학교 생각만 하면 그냥 웃음이 나온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주세요. 왕언니 공부하러 학교 갑니다.”
오늘도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조씨의 두 다리에는 힘이 절로 솟는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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