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원래 궁형(즉, 거세형)을 받은 자들을 주로 환관으로 채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나라 때에 이르러 궁형이 폐지되면서 민간지원자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가난한 집안에서는 자식을 환관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심지어 1621년 명나라에서는 환관 3천명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가자마자 2만명 넘게 응모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너무 치열한 경쟁에 분노한 응모자들은 시위를 벌였고, 이에 급히 채용 인원을 크게 늘려 4천500명을 선발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채용되지 못한 자들이 노숙하며 정부를 압박했다고 한다.
환관이 되는 길은 특수사정에 의해 강제적으로 거세된 경우, 우연한 사고로 인한 경우, 선천적인 경우, 그리고 스스로 또는 부모, 기타 보호자에 의해 거세된 경우 등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에서는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5형(刑) 가운데 하나인 궁형(宮刑)에 처해 환관으로 충당했다. 고려 때에는 궁형이 없었으나 훈제(燻制)의 방법으로 범죄자를 거세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원나라에 대한 환관 진공을 위해 주로 천민들을 대상으로 강제 거세를 자행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환관은 중국 고대사 최고의 역사서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이다. 그는 유명한 ‘이릉의 화’(흉노족에게 항복한 이릉 장수를 변호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형벌을 받은 것)를 당해 죽음을 택하느냐, 거세를 택하느냐, 아니면 벌금을 내고 자유인이 되느냐 갈림길에서 거세형을 택한다. 돈이 없었을 뿐더러, 무엇보다 부친의 유지인 훌륭한 역사서를 완성하라는 당부를 포기할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거세형을 받아들였다. 이후 황제의 사면을 받은 사마천은 다시 궁으로 돌아와 중서령으로 일했고, 마침내 불후의 역사서 「사기」를 완성했다.
환관은 서양에도 있었다. 고대 페르시아와 로마에는 환관이 궁정에서 활약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카스트라토(castrato)라고 불리는 여성음역을 노래하는 남성가수를 만들기 위해 사내아이들이 사춘기를 맞기 전 거세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여성이 교회에서 노래하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대의 산물로, 이들은 오페라에서도 맹활약했다. 또 성적인 욕망을 제거하기 위해 스스로 거세하는 성직자도 있었고, 거세한 자들로만 이뤄진 종파가 존재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환관이 최고 권력자인 황제나 왕의 최측근에서 일하는 까닭에 역사적으로 이들에 얽힌 이야기는 주로 한나라의 패망과 관련된다. 진시황을 보좌하던 환관 조고(趙高)는 제위를 맏아들 부소에게 넘기라는 진시황의 유언을 무시하고 둘째아들 호해에게 넘긴 뒤 부소를 죽이고 권력을 농단한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秦)은 이 때문에 멸망했다.
원나라에 보내진 고려 출신 환관들은 황실의 총애를 받아 거꾸로 원나라의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하고, 영향력을 행사해 고려로부터 봉군되기도 했으며, 그 친족들까지 득세하게 했다. 심지어는 본국을 중상하고 악질적인 불법행위를 자행하는 이들도 있었다. 충선왕 때의 백안독고사(伯顔禿古思)라는 환관은 원나라 영종(英宗)에게 참소해 원한을 품고 있던 충선왕을 토번(吐蕃)으로 귀양 보내게까지 했다.
환관의 발호로 민생은 피폐해지고 세상이 어지러워진 대표적인 경우가 십상시(十常侍)다. 중국 후한 말 영제(靈帝) 때 조정을 장악했던 환관(宦官) 10명을 지칭하는 용어로, 영제는 이들에 휘둘려 나랏일을 뒷전에 둔 채 거친 행동을 일삼아 제국을 쇠망에 이르게 했다. 「후한서(後漢書)」는 12명,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10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어쨌든 조정을 장악한 십상시가 장각(張角)이 이끄는 황건적(黃巾賊)의 난을 평정한 뒤 모두 열후(列侯)에 봉해지고, 멋대로 천자의 칙명을 내리는 등 부패가 극에 이르자 원소와 조조 등이 대궐로 들어가 십상시를 비롯한 환관들을 모두 죽인다. 바로 군웅이 할거하는 대전란의 시발점이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VIP(대통령)측근' 동향 감찰보고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 보고서는 소위 '비선 실세'로 불리는 청와대 내부 인사 6명과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청와대 외부 인사 4명을 '십상시'로 지칭하고, VIP측근이 이들과 서울 강남권 중식당과 일식집 등에서 만나 청와대 내부 동향과 현 정부 동향을 논의한 사실을 담고 있다. 대통령은 즉각 문건 유출과 언론의 보도를 문제 삼고 나섰지만 정작 국민들 걱정은 이 정권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비선 실세니 문고리 권력이니 하는 이들의 '국정농단'이다. 사실이라면 그 끝은 예측하기 어려운 대혼란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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