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이 2014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꼽은 '지록위마'는 '사슴(鹿)을 가리켜 말(馬)이라 한다'는 뜻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진시황본기」에 조고(趙高)가 황제에게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고, 진실과 거짓을 제멋대로 조작하고 속였다는 데서 유래했다. 교수들이 갑오년의 상징으로 지록위마를 꼽자 주요 포털의 인기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누리꾼들은 심지어 지난 한해 지록위마의 사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시리즈까지 만들어 이곳저곳 퍼 날랐다.
지록위마 시리즈 가운데 첫째가 바로 ▲정치개입은 했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원세훈 판결)다. 나머지도 촌철살인(寸鐵殺人)에 가깝다. ▲56조원 빚 남겼지만, 실패한 자원외교 아니다( 최경환 부총리) ▲내리라고는 했지만, 비행기 돌리라고는 안 했다('땅콩'회항사건)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 KBS에 언론보도 협조요청은 했지만, 언론통제는 아니다(청와대) ▲세월호 참사는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다(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 ▲담뱃값 인상, 국민 건강 위해서다(최경환 부총리) ▲공문서 위조는 했지만, 간첩조작은 아니다(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수사검사) ▲유출된 문건이 청와대 문건은 맞지만, ‘찌라시’다(청와대) ▲전시작전권 (반환)은 연기했지만, 군사주권은 포기하지 않았다(국방부장관) ▲원전은 해킹 당했지만, 원전은 안전하다( 한수원).
지록위마 시리즈는 해를 넘겨서도 첨가될 분위기다. ▲종북몰이는 하고 있지만 정치공세는 아니다(통합진보당 해산 사태) ▲4대강 사업은 효과가 애매하지만 성과가 있다(4대강사업조사평가위원회 발표) 등등으로.
지록위마의 실제 주인공 환관 조고는 실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한다. 진시황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때에 따라 수라상을 들이고, 백관의 주청을 받아 황제에게 올리는 척했다. 심지어 썩어가는 시신의 냄새를 숨기기 위해 수레에 전복 한 가마를 함께 실었다고 사마천은 적고 있다. 조고는 황자 호해를 황좌에 즉위시키고, 황권을 넘볼 가능성이 있는 힘 있는 대신과 관리들을 모조리 참살했다. 지록위마는 바로 조고가 차지한 권력의 힘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이다.
진시황본기에 의하면 조고가 사슴 한 마리를 어전에 끌어다 놓고 '말'이라고 우기자 중신들의 반응은 세 부류였다 한다. 두려움에 침묵하는 이, 말이라 말하며 아부하는 자, 끝까지 사슴이라고 말했다가 조고의 손에 죽임을 당한 이 등등. 중국문학을 전공한 한 교수는 이 때문에 교수신문이 2014년 갑오년을 상징하는 고사성어로 지록위마를 선택한 것은 '반만 맞다'고 지적했다. 2014년 우리사회에서 사슴을 말이라고 한 사람들 중 바른말을 하면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었을 이도 없었을 뿐더러, 두려움은 고사하고 번민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서다. 더구나 사슴을 말이라 우기는 권력자에 죽음을 각오하고 맞서 사슴이라 말한 이도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권력자가 사슴을 말이라고 하기도 전에 알아서 말이라고 하는 자들만 우글댔으니 이 교수의 지적은 백번 지당하다.
교수신문은 연초에 희망의 화두를 제시하고, 연말에 세태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꼽는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에 맞춰서 내놓은 희망의 사자성어는 제구포신(除舊布新),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였다. 그러나 연말 사자성어는 도행역시(倒行逆施),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였다. 2014년도 마찬가지였다. 연초 희망 섞인 사자성어는 전미개오(轉迷開悟),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의 깨달음에 이른다'였으나, 연말에는 거짓이 판치는 지록위마로 쪼그라들었다. 올해 교수신문이 제시한 희망의 사자성어는 정본청원(正本淸源)이다. '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한다'는 뜻이다. 기본을 바로 세우고 원칙에 충실한 국가와 사회가 되길 바란다는 교수들의 뜻이 모아졌다 한다. 과연 실현될지 올 연말 사자성어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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