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교훈을 잊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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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교훈을 잊은 정부

또 터졌다. 시리아 난민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가 터키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돼 세계를 강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추자도 낚싯배 사고가 터졌다. 추자도 사고는 세월호 판박이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 반 가까운 509일째에 믿기 어려운 일이 다시 현실이 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가 한 일은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한 것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백번 양보해 이번 낚싯배 사고가 비바람이 치는 악천후에 무리한 출항으로 일어났다고 하자. 주말이었던 5일, 추자도에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너울성 파도가 치는 날씨였다고 한다. 10톤이 채 안 되는 소형 낚싯배가 무리한 출항을 하지 않도록 관리 감독하는 것은 해양경찰이 해야 할 일이다. 무엇 하나 관리되고 있는 것이 없었다. 사고가 나고 승선 인원 파악마저도 세월호처럼 오락가락했다. 배가 입출항 할 때 작성하도록 되어 있는 입출항기록과 승선 인원은 해양경찰이 아닌 어촌계장이 관리하고 있었다. 해양경찰이 없는 지역은 아직도 민간이 관리하고 있다. 크고 작은 해상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사고가 난 지 11시간 만에 뒤집힌 배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해양경찰이나 해군이 발견한 것이 아니라 사고 현장을 지나가던 고깃배가 발견했고 저체온증에 시달리고 있는 3명을 구조한 것도 고깃배였다. 사고 당일 저녁 해군 함정과 해경선 등 수십 척이 사고 현장을 수색했지만 11시간 동안 배를 발견하지 못했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을 한 것이다. 사고가 난 지 4일이 지났지만 아직 실종자를 한 명도 찾지 못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악할 일이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보여준다. 여전히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수 없는 현실을 우리는 눈으로 다시 확인하고 있다.
국민안전처가 출범하면서 육상 사고는 30분 안에 해상사고는 1시간 안에 신속히 출동해 구조한다는 매뉴얼은 공염불이었고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제주도와 해남 중간에 위치한 추자도에 부산에서 해양특수구조대가 출동한다는 것부터가 엉터리다. 헬리콥터로 가더라도 1시간이 넘는 거리다. 부산 해양특수구조대는 헬리콥터가 뜨지 못해 육상으로 이동 후 사고현장에 10시간 만에 도착했다. 제주해경 경비정은 3시간 뒤에야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날 느닷없이 비무장지대 지뢰 사고로 발목이 절단됐던 장병들을 문병했다. 왜 낚싯배 돌고래호 사고 수습을 위해 국민안전처를 방문하지 않고 지뢰사고 장병을 문병했는지 의문이다. 일부 언론에서 비판한 추자도 사고에서 국민의 눈을 돌리려 한 것이라는 말을 나는 믿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러했을 리 없다고 믿고 싶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정부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교훈으로 삼았을까? ‘사람이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이다’는 볼테르의 말을 곱씹지 않아도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올 여름 폭염에 농촌에서 일사병으로 사망자가 속출하자 뒤늦게 폭염주의보 긴급재난 문자를 발송했다가 뭇매를 맞은 국민안전처는 ‘낚싯배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엄단하겠다고 재빠르게 큰소리를 쳤다. 이 말 역시 감당할 수 없는 역풍에 시달렸다. 국민안전처가 국민을 협박한다는 비판에 맞닥뜨린 것이다. 승선자 명단에 들어 있었지만 배를 타지 않은 사람이 ‘잘 가고 있다’고 말 한 것을 빼고 유언비어는 없었다. 이도 사고 사실을 모르고 장난기가 발동한 대답이었던 것이다.
정부가 세월호에서 배운 교훈 한 가지는 있는 듯하다. 희생자 합동분향소 설치를 불허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은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사고가 나더라고 구조되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생명이 보장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최소한의 반성과 사과, 같은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는 나라에서 살고 싶은 게 온 국민의 바람이다. 페루 산호세 구리광산 매몰자 33인이 69일 만에 구조돼 전원이 목숨을 건진 기적 같은 일을 희망으로 품고 살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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