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는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판도라는 여성혐오와 관련 깊다. 여성이 창조되기 전 인간은 신(神)들의 동반자였다. 함께 평화롭고 자율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달아나자, 분노한 제우스는 인간에게 그 벌로 최초의 여자, 즉 판도라를 준다.
제우스가 인간에게 준 판도라는 '즐거움을 위한 악한 것(evil thing for their delight)'이었다. 즉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여자는 '악한 것'이었다. 판도라에게는 절대로 뚜껑을 열어서는 안 되는 단지(또는 상자)가 있었다. 에피메테우스는 형제 프로메테우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반해 결혼한다. 또 판도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갖고 있던 단지를 열고, 그 결과 세상에는 출산, 질병, 노화, 죽음 등 온갖 악이 퍼진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가 여성혐오의 정도가 좀 심한 것 같다. 2세기에서 3세기 초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테르툴리아누스라는 교부(?父, Church Fathers, 기독교 신학의 주춧돌을 놓은 이들을 뜻함)는 여성을 '악마의 통로'이자 '하수구 위에 지어진 성전'이라고 가르쳤다.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도 마찬가지다.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알라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건전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성을 따를 것이며, 남성이 부재 시 남편의 명예와 자신의 순결을 보호할 것이라, 순종치 아니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에게는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가볍게 때려 줄 것이라, 그러나 다시 순종할 경우는 그들에게 해로운 어떠한 수단도 강구하지 말라, 진실로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니라.'
여성혐오는 비단 종교에만 그 근원이 숨어있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철학자들 가운데도 여성혐오자로 비판받는 이들이 많다.
쇼펜하우어는「여성에 대하여(Uber die Weiber)」라는 에세이에서 "여성은 유치하고, 천박하며, 근시안적이다. 천성적으로 복종하는 역할에 걸맞다. 어떠한 여성도 위대한 예술이나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작품을 전혀 생산해낸 적이 없다. 여성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니체의「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지금 여자를 보러 가나? 채찍을 챙겨가는 것을 잊지 말게!"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더 나아가 "여성이 심오하다고 여겨진다. 왜냐고? 우리는 절대 그들의 깊이를 짐작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는 깊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강남역 살인사건을 놓고 '묻지 마 살인'이니,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살인'이니 논란이 일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충돌하기도 했다니 논란의 정도가 심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묻지 마 살인이든 여성혐오 살인이든 결론을 내려 본들 걱정과 두려움은 여전히 남는다. 강남역 살인사건 역시 최근 들어 우리사회에서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도무지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드는 엽기적이고, 반인륜적이며, 반사회적 살인사건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부와 권력과 명예가 대물림 하는 나라, 열정페이, 취업난, 삼포세대로 대변되는 이 땅의 청년들이 자기 나라를 '헬(Hell, 지옥) 조선'이라고 부르는 곳, 자산 상위 10% 계층이 전체 자산의 66.4%(2013년 기준)를 독차지 하는, 갈수록 양극화가 심각해져 가는 나라다. 뭐니뭐니 해도 돈이 최고일 뿐이다. 온정(溫情)이니 염치(廉恥)니 그런 게 대수일리 없다. 그렇다고 부모형제, 더 나아가 사람의 목숨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니 어디서부터 문제가 잘못되었는지 답답하고 막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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