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Conservatism)는 18세기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에 의해 체계화됐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버크의 정치이력은 수상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의 개인 비서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로킹엄 후작(Marquis of Rockingham)의 개인 비서로도 일하다 그의 후원에 힘입어 1766년부터 하원의원으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괴팍한 성격과 돌발적 행동 때문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그가 오늘날 '보수주의의 아버지'로까지 평가받는 정치사상가가 된 사건이 있었다. 바로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다.
버크는 프랑스대혁명을 목도한 뒤 1790년 '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s in France)이라는 책을 출간한다. 바로 이 책으로 인해 그는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주목받는 정치가로 거듭난다. 당시 프랑스대혁명을 둘러싼 영국인들 사이의 논쟁에 새로운 방향을 제공했고, 이후 그의 정치사상은 급진적 이상주의에 대한 해독제처럼 각인되기도 했다.
1789년 프랑스에서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유주의를 향한 민중의 열망이 폭발하면서 왕권타도에 성공한다. 대신 혼란과 무질서는 극에 달했다. 감옥 바스티유(Bastille) 습격사건이 발생한 3주 뒤 버크는 고향의 제임스 콜필드(James Caulfield)에게 쓴 편지에서 그 혼란과 무질서를 이렇게 표현했다. "프랑스인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 정신(spirit)은 찬양하지 않을 수 없지만, 낡아빠진 폭력성(ferocity)이 충격적인 방식으로 표출됐다. 이들은 자유에 적합하지 않다. 반드시 강력한 힘(a strong hand)이 그들을 강제해야 한다.…"
그는 다름 아닌 무질서한 프랑스혁명이 영국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한 나머지 프랑스혁명을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 폭도들이 책임도 없이 왕권을 무너뜨린 비합리적 행위로 인식했다. 그러면서 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인간사회에는 역사 속에서 쌓아온 보존하고 지켜야할 가치들이 있다." 바로 '보수주의'의 출발이다.
19세기 들어 보수와 급진(혁명)은 '자본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특히 보수는 공산혁명에 대항해 변화를 통해 민중에게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할 수 있다며 '개혁(reform)'을 주창한다. 바로 '보수·개혁의 논리'와 '급진·혁명의 논리'가 대립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는 보수와 급진 혹은 혁명의 논쟁까지도 더 이상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이라는 책을 쓴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라는 학자는 심지어 국제질서가 이념의 시대를 넘어 자유민주주의로의 역사적 마지막 발전단계에 와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보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정신분석학 지식을 이용한 정치행동연구를 하고 있는 김용신 박사는 '보수와 진보의 정신분석'이라는 책에서 "대한민국은 북한의 공산혁명이론에 반대해 수립된 국가여서, 공산혁명의 반대세력인 자유민주주의세력이 정권의 핵심으로, 서구적 분류로 보면 보수 세력이 주류"라고 규정한다. 이어 "(이런 보수가 낳은 사생아)인 군사독재체제는 민주주의 확립과 공산주의 타도라는 슬로건 아래 자신들이 민주주의 수호자인 것처럼 주장하며 반공을 제일가치로 내걸어 그들의 정체성 확보에 나선 반면,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비판하는 세력은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하며 반공은 받아들이나 군사독재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면서, 따라서 "한국의 정치세력은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서구의 보수적 입장에 있으면서도 군사정권유지세력과 군사정권종식강조세력으로 양분되어 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대결은 구체화되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말하자면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반대개념이 아니라 '같은 보수의 다른 한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그는 한국의 보수의 문제점에 대해 "군사독재에 기생해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해온 일부 세력들은 군사독재가 사라진 후에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군사정권하에서 경제적 발전의 성과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자기의 과거행동을 변명만 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버크가 주창한 진정한 보수의 축에도 끼기 어려워 보이는 한국의 '일부' 보수들은 요즘 '국정농단'의 치부를 이념대결로 희석시키느라 바쁘다. 자신들의 주장과 반대되는 이들에게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친북좌파' 딱지를 붙인다. 대선이 본격화하면서부터 그 '일부'의 경계는 더욱 확산일로에 있다. 군사정권유지세력에 뿌리를 둔 이른바 극우 보수의 '본색'을 어김없이 드러내는 중이다. 이로 인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잘잘못은 어느새 보수와 진보라는 엉뚱한 이념대결로 가려져간다. 일부 언론은 덩달아 경마를 중계하듯 한창 난리법석이다. 보수주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가 지금 한국 땅에서 한바탕 활극을 펼치고 있는 극우 보수들의 작태를 보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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