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표(信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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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표(信標)

그리스로마신화의 영웅 테세우스는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와 트로이젠의 공주 아이트라의 아들이다. 아이게우스와 아이트라는 테세우스가 뱃속에 있을 때 헤어진다. 아이게우스는 헤어지면서 아이트라에게 신표(信標)를 남기며, "바위 밑에 물건을 숨겨두었으니 훗날 아이가 자라거든 이를 찾아 들고 오게 하라"고 당부한다.
어느덧 건장한 청년이 된 테세우스는 어머니가 시킨 대로 바위 밑에 감추어져 있던 왕가의 검과 신발을 꺼내들고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여행 도중 헤라클레스의 모험담을 전해듣고는 일부러 쉬운 길을 버리고 악당들이 득실거리는 험한 길을 선택한 그는 여섯 악당을 퇴치하며 당당하게 부친이 있는 아테네에 도착한다.
한편 아테네의 왕이자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아내는 동방에서 온 마술사 메데이아다. 그녀는 왕궁을 찾아온 테세우스가 아이게우스의 아들임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뿐만 아니라, 내버려두면 자신의 아들로 왕위를 잇게 하려는 야망은 물거품이 될 것 같았다. 이에 메데이아는 테세우스의 술잔에 독을 탄다. 테세우스가 그 술잔을 마시려던 순간, 아이게우스 왕의 눈에 테세우스가 차고 있는 신표, 즉 왕가의 검과 신고 있는 신발이 보였다. 그야말로 적기에 아들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혈연관계라면 당연히 서로 끌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릴 적 헤어진 부모자식 또는 형제자매가 다시 만난다면 혈육임을 나타내는 증거 없이는 아이게우스왕과 테세우스처럼 서로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래서 그리스로마신화나 고구려 건국신화 등에서는 신표가 등장한다. 한때 인기 TV드라마였던 '선덕여왕'에서는 증인이 혈육관계를 입증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검시서인 '무원록'에서는 부모의 두개골에 피를 떨어뜨려 스며들면 친자(親子), 흘러내리면 혈연관계가 없는 것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요즘엔 DNA 검사가 이 신표와 증인의 역할을 대신한다. 유전자 감식을 통해 친생자 여부 등을 밝혀내는 친자확인은 신체 세포조직의 일부로부터 특정 DNA(디옥시리보핵산)을 분리해 분석, 친생자여부 등을 밝혀내는 첨단기법이다. 사람을 구성하는 각각의 세포에는 핵이 있고, 그 핵 안에는 유전정보기록을 담은 DNA가 있어 고유한 형질을 만들어 나간다. 이 개인별 유전적 특성을 각각 다른 모양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 유전자 감식이다. DNA는 어떤 세포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의 모근이나 혈액, 입안의 점막세포는 물론 정자에서도 검출된다고 한다.
유전자 감식은 사람이 가진 DNA 중 다형성이 매우 심한 초변이성 일부만을 DNA 증폭기술을 이용해 선택적으로 증폭해 개인 간의 유전자형의 차이를 알아내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손가락 지문처럼 사람마다 서로 다른 DNA 모양을 형상화하는 기술로,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유일한 DNA 염기서열을 갖기 때문에 신원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6·13 지방선거를 치른 우리 지역에 요즘 'DNA 검사를 통한 친자확인'이 화두다. 선거운동과정에서 느닷없이 전동평 군수의 혼외아들 의혹이 제기되고, 전 군수가 이를 강력 부인하면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혐의로 고소고발 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가리기 위한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딱 하나다. DNA 검사를 통한 친자확인. 하지만 아무래도 쉬 결론나기 어려울 듯싶다. 전 군수가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명한 사람과 DNA(유전자) 검사를 받겠다"고 공언했으나 그 상대방이 원치 않는다면 검사를 강제할 방법이 없어서다. 사건이 미궁에 빠지고, 뒤숭숭한 지역사회 분위기가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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