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눔 ‘타인능해(他人能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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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나눔 ‘타인능해(他人能解)’

김 재 원 전남도 정책보좌관

지리산 자락,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운조루(雲鳥樓)’는 정말 아름다운 집이다.
그것은 건물의 건축학적 특징이나 한옥만이 가지고 있는 멋에서 금세 드러난다. 하지만 운조루를 더 빛나게 하는 것은 이 집을 지은 류이주(1726∼1797년)와 지금 그 곳에 사는 자손들의 마음 씀씀이다.
옛날 우리 삶에서 쌀을 담아두는 뒤주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집안 깊숙이 놓아두는 게 상식이었다. 그러나 운조루의 뒤주는 사랑채 옆 부엌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게다가 뒤주의 여닫이 마개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이 씌어 있다. 누구든지 필요하면 쌀을 마음대로 가지고 가라는 뜻이다.
주인이 직접 쌀을 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가져가는 이의 자존심까지도 생각한 것이다. 한옥의 대문에는 대개 높다란 문턱이 있지만 운조루의 대문에는 문턱도 없다. 필요하면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배려다.
이 집에 굴뚝이 없는 것도 눈여겨 볼만한 점이다. 굴뚝을 설치하는 대신 연기는 건물 아래 기단에 구멍을 내어 그곳에서 연기가 나오도록 했다. 연기 때문에 집 안 사람들이 고생을 했겠지만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양반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고 연기를 피우면 가난한 이웃 주민들이 더 힘들어 할 것이란 생각이다. 그 마음 씀씀이에서 넉넉함이 엿보인다.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이 성큼 다가왔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명절이 반갑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채 웃음을 잃고 쓸쓸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 떡국 한 그릇, 과일 하나라도 이웃과 나눠먹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전라도 사람들은 어려울 때 오히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찾아 인정을 넉넉하게 베풀어 왔다. 우리 도에서도 해마다 명절 때면 불우이웃과 사회복지시설 생활자들을 찾아 위문품을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형편상 흡족하게 지원하지 못해 수혜 대상이 일부에 그친다.
항상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 시설생활자 뿐만 아니라 소득이 낮은 계층과 혼자 사는 노인, 모자·부자가정, 소년가장 등 어려운 이웃들이 우리사회의 일원으로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조그만 정성과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할 때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결코 큰 돈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말벗이 되어 주고 식사수발, 빨래 등의 자원봉사도 외롭고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겐 정말 고마운 일이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 게다가 설날을 맞아 어려운 우리 이웃들을 돌보고 조그만 정이라도 나누는 분위기가 그립다.
절망하고 슬퍼하는 이들에게 사랑과 정을 베풂으로써 삶의 희망을 갖게 하는 명절이 된다면 정말 살 맛 나는 세상이 될 것 같다. 운조루의 ‘타인능해’가 새겨진 쌀뒤주는 가진 자의 도리를 일깨우는 상징이다. 빈부의 양극화가 사회문제가 된 지금, 운조루의 나눔의 뜻이 더욱 새롭고 귀하게 다가온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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