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동마을에 가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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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동마을에 가보셨나요?

김기천 영암군의원 (학산·미암·서호·군서) 정의당 영암군지역위원회 부위원장
엄동설한에 영암군청 정문을 지키는 주민들이 있다. 연말까지는 미암면 기관사회단체장들이 불안을 달래며 번을 섰고 새해 초부터는 학산면 묵동마을 주민들이 고통스럽게 바통을 넘겨받았다. 외롭고 서러운 이들이 ‘슬픔과 고통의 연대’를 이루었다. ‘군민이 희망이다 모두가 행복한 일등영암 건설’이란 대문짝보다 큰 구호가 장식하고 있는 정문 아래서 현란하게 나부끼는 각종 치적을 자랑하는 현수막을 뒤로 한 채 주민들은 몸부림치고 있다.
이들이 북극한파를 견디는 이유는 한 가지다.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돈사허가를 내주지 말라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대규모 기업축산업체가 영암지역 곳곳을 샅샅이 훑고 다니는 모양이다. 시가보다 몇 배나 높은 웃돈을 얹어 토지를 사들이는가 하면 허가찬성 여론을 만들기 위해 통 크게 이주비를 지불하고 서명을 대가로 몇 백만원씩 돈을 뿌리고 있다는 풍문이다.
축산자본은 위대(?)해서 문제가 될 만한 토지는 어김없이 쓸어 담고 개인의 의사조차 현금으로 거침없이 사들이고 있단다. 그에 맞선 주민들의 외침은 외마디 비명 같아서 힘겹기 짝이 없다. 돼지돈사 허가 전에 주민부터 살려내라, 태양광에 돼지돈사 이게 사람 사는 동네냐 짐승 사는 마구간이냐, 더 이상은 못 살겠다 영암군은 묵동마을 생활터전 보상하고 이주대책부터 세우라는 이 외로운 절규에 답할 자가 누구인가?
묵동마을은 국립공원 월출산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물 맑고 햇살 깨끗한 청정마을이었다. 강진과 경계에 놓였던 터라 이 마을 친구들은 더러는 초안과 독천으로, 또 일부는 성전으로 학교를 다녔는데 걷고 뛰기를 밥 먹듯이 했던지 튼실한 팔다리 힘은 감히 따를 자가 없었다. 어린 시절 묵동친구들과 어울려 저수지 아래 웅덩이에서 첫 헤엄을 배웠고, 물빛 찬란한 수면 위로 물수제비를 뜨며 유년시절을 수놓곤 했었다. 독재와 개발의 시대를 거치면서 어느 마을도 성한 데 없이 할퀴었겠으나 묵동마을은 그 생채기가 유난히 굵고 날카로웠다. 동네 맞은편 흑석산 골짜기는 석산개발로 10년간 발파음과 분진을 뿜어냈고 회복할 수 없는 파괴의 흔적을 산자락에 남겼다. 바닥까지 선명했던 밤재 저수지 상류에 FRP조선소가 들어선 일도 마을에는 재앙이었다. 물은 탁해졌고 말조개와 물고기떼가 수면 위로 떠올라 악취를 풍겨댔다. 뒤를 따른 로프공장은 쉴 새 없이 비닐탄내를 뿜어내며 온 마을이 지독한 두통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축사는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현재 마을주변으로는 21개 농장이 있는데 한우, 젖소, 산양, 흑염소, 오리, 양계, 돼지까지 5만수가 넘는 짐승들이 마을주변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몇 년 전에는 남해고속도로가 마을 앞을 가로지르며 삶의 터전을 두 동강 내버렸다. 여기서 그친 게 아니다. 아스콘 제조공장 두 곳도 있다. 더군다나 지난해부터는 태양광 열풍이 몰아쳤다. 수려한 풍광에다 산나물과 밤나무가 즐비해서 봄과 가을철이면 뭇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던 산자락은 무참히 깎여나갔고 그 자리에 성벽처럼 들어선 태양광발전소가 혐오스럽게 번뜩거리고 있다.
그런데 이 온갖 탐욕의 난장도 모자라 대규모 돈사가 쳐들어오겠다는 것이다. 묵동리 산 79-12번지 3천725평에 지상 2층짜리 두 동, 묵동리 79-3번지 2천792평에 지상 2층짜리 두 동, 인근 오로라 리조트자리 7천570평에 지상 1,2층 15동 등 총 세 곳이 돈사허가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이 정도가 되면 이곳은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라 짐승 사는 마구간이고, 평온한 삶의 보금자리가 아니고 불안과 공포의 난장판이라고 해야 옳다.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이 마을 주민들의 울분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인가 절규하는 주민의 물음에 영암행정은 답해야 한다. 지방선거 당시 불허가를 분명하게 약속했던 군수께도 주민들은 묻고 있다. 그 약속은 지금도 유효한가, 왜 주민들의 물음에 침묵하시는가?
사실 묵동마을이 갖고 있는 지리적 의미는 각별하다. 밤재 저수지는 영암군 광역 친환경벼 재배단지 중 가장 규모가 큰 신안정단지의 젖줄이다. 학계, 용소, 지소, 천해, 상사, 상월, 사등, 초안, 신안정마을의 친환경벼를 밤재 저수지 물이 키워내고 있는 셈이다. 지금처럼 물밀듯이 밀려드는 돈사에서 만의 하나라도 축산오폐수가 흘러넘친다면 저수지 오염은 물론이고 친환경단지에 끼치는 피해가 재앙수준이 될 것이다. 10년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게 자명하다.
또 하나, 남아 있는 주민들의 겪어야 할 피해가 불 보듯 한데 정작 그들은 인허가 과정에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돈사부지로부터 100m 안에 거주하던 주민은 시세보다 높은 토지보상비와 이주비를 받고 모두 떠난 상태고 주민이 가장 많이 사는 묵동마을은 700m 밖에 있다는 이유로 의사결정에서 배제되고 있다. 그 중간에 낀 호동마을 주민들 또한 의견진술 기회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오도 가도 못한 채 최 일선에서 악취와 폐수, 해충 같은 환경오염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주민들의 절박한 처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한민국 헌법은 선포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35조 제1항). 환경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못 박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는 더 구체적으로 국민의 환경권을 웅변하고 있다. 대법원은 헌법 35조의 환경권과 함께 환경정책기본법 제2조 ‘국가지방자치단체사업자 및 국민은 환경을 이용하는 모든 행위를 할 때에는 환경보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과 환경오염발생 우려와 같이 장래에 발생할 불확실한 상황과 파급효과에 대한 예측이 필요한 요건에 관한 행정청의 재량적 판단은 그 내용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여하였거나 상반되는 이익이나 가치를 대비해 볼 때 형평이나 비례의 원칙에 뚜렷하게 배치되는 등의 사정이 없는 한 폭넓게 존중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3.15 선고 2016두 55490판결)고 명쾌하게 판단하고 있다.
대법원은 선언한다. 묵동마을 주민은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가 있다. 영암군과 묵동마을 주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영암군과 묵동마을 주민은 환경을 이용한 행위를 할 때 환경보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영암군청은 장래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환경오염 우려를 판단할 때 누가 봐도 편파적이지 않는 한 폭넓은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
이제 다시 묻고 싶다.
묵동마을에 가보셨습니까? 거기 사람이 살만한 곳이던가요? 묵동마을 주민들은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있던가요? ‘규정과 절차’를 따라 돈사허가를 내준 뒤 견디고 살라고 해도 행복하시겠던가요? 그래도 되겠던가요?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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