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골 초목들의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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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골 초목들의 수난사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큰골에는 초목들을 들어차 있었다. 그런데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초목들의 수난사가 시작되는데 물론 이 시대에는 이곳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큰골은 유역면적이 대략 4천933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넓은 면적인데다 산골이 깊고 험준해 다른 지역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이곳의 수난사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쯤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 그 당시에는 해창리에 도포면과 영암을 잇는 다리가 없어 나룻배를 이용하여 큰골까지 초목을 채취하러 왔다. 아침 6시경부터 꼬리를 잇는 초목꾼들이 10시경이 되도록 이어졌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큰골의 초목을 채취해갔는지 가히 짐작할만할 것이다. 아마 몰라도 어림잡아 하루에 1천명 정도가 입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1960년 후반기 들어 큰골은 작대기감 하나 없는 민둥산으로 변해 버렸다. 물론 불법 초목 채취를 막는 ‘송감’이 지키기는 했지만 그 당시 사회 환경이 초목 채취를 말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초목 채취는 식생활과 겨울철 난방생활에 필수조건이었던 연료용이었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산업의 발달과 농촌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감과 동시에 연탄이 보급되면서 서서히 초목채취가 줄어들었으나 이미 큰골 전체는 구정봉과 천황봉 밑까지 작대기감 하나 없는 민둥산이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나라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연탄과 유류, 전기 등의 보급으로 식생활을 비롯한 환경이 변화되어 현재에 이르러서는 큰골 전체가 푸르른 초목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결론적으로 송감이 지킨다고 초목들이 지켜지는 것이 아니고 정책적으로 나라경제가 부유해져야 해결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도 화재를 비롯해 큰 자연재해 없이 꾸준히 이어져 아름다운 큰골, 더 나아가 월출산 국립공원이 영원하길 바란다.
/ 조동길(영암읍 회문리 녹암대동보길 126번지)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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