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에는 응급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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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에는 응급실이 없다

조영욱 시인
불행하게도 내 고향 영암에는 응급실이 없다. 영암, 고흥, 강원도 고성 등 전국 19개 시·군엔 응급실이 없다. 이 지역에서 살아가려면 아프면 안 되고 응급 환자는 유명을 달리해야 하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은퇴한 도시인들이 귀농·귀촌을 하려 할 때 첫 번째 고려 대상은 큰 병원이다. 큰 병원에는 체계적인 의료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있고 응급실이 있기 때문이다. 큰 병원이 있어도 응급실이 없으면 일단 후보지에서 제외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지고 응급실에 갈 일이 많아진다. 오죽하면 구구팔팔일이삼사(99881234)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아흔 아홉까지 팔팔하게 살다 하루 이틀 앓다가 사흘째에 죽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요순시대(堯舜時代)가 오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이상적이지만 모두가 바라고 바라는 염원이다.
다가올 미래에는 지방분권시대이어야 한다. 노무현 참여정부가 부르짖었던 것은 지방분권과 행정수도 이전이었다. 이제 법이 제정돼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제 첫 발을 뗀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70여년간 중앙집권정책을 펴다 보니 모든 것이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게 서울 수도권 중심이 돼 버렸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의료분야는 더 심각하다. 전국 19개 시·군에 응급실이 없고 아이를 낳으려 해도 농어촌에는 분만실마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공의료뿐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해결해야 할 몫인 것이다.
올 7~8월 의료계 집단 진료 거부는 재앙이었다. 지방에 사는 사람도 사람이지만 농어촌민들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불법이었던 의료계 집단 진료 거부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의과대학 정원을 확대를 반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의원에서 처방한 한약을 의료보험에 포함시키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집단이기주의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로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시기에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인술을 펼쳐야 할 의사들이 환자 목숨을 볼모로 앞장서서 집단 진료 거부를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이 때 프랑스에서는 공공의료 확충하라는 프랑스 의료계가 대규모 시위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대의 대세인 공공의료를 백지화하라고 시대착오적인 제 밥그릇 챙기기 바쁠 때 프랑스 의료계는 공공의료 확대를 주장했다. 이게 환자 목숨을 우선시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걸맞은 양심이다.
왜 19개 시·군에 응급실이 없는가? 갈수록 농촌 인구가 줄어 적자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평생 의료 봉사를 했던 슈바이처 박사가 아니라면 민간의료기관에게 감당하라 할 일이 아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공공의료이다. 기존 의사 본인들은 농어촌에 갈 마음도 의사도 없으면서 공공의료에 종사할 지역 의사와 간호사를 배출하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공공의료는 응급실이 없는 의료 취약지역부터 공공병원을 확충, 신축하는 것이다. 공공이 책임지는 의료기관은 중환자, 감염관리, 외상(外傷), 의과학자까지 갖추게 된다. 정부는 우선 시급한 공공의료 인력 4천명을 배출, 확충하고 향후 1만명까지 확충할 계획이었다.
지난 번 의료계 집단 진료거부는 의사들이 제약회사로부터 뇌물로 받은 리베이트를 덮기 위해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설도 있다. 한 제약회사에서 밝혀진 일부가 400억이었으니 제약회사를 다 합친다면 몇 조가 될 것이라는 말은 낭설이 아닐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 의료계는 환자와 국민들에게 사과다운 사과를 했는가? 의료계 집단 진료거부 때 가장 강렬하게 집단 진료거부를 주도 했던 인턴 레지던트인 전공의들은 "의사가 되기 전에 사람부터 돼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인성(人性)을 갖추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석고대죄 해도 모자랄 판에 사과도 없다. 이에 덩달아 전국 의대생 85% 이상이 의사국가고시 응시를 거부했고 현재 진행형이다. 사과는커녕 뒤늦게 이제 와서 재응시 기회를 달라고 정부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다. 여전히 국민들 6할 가까이는 재응시 기회를 주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법은 형평성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선 안 된다. 이미 의약분업으로 집단 수업 거부했던 3천800여명 한의대생들은 전원 유급을 당한 선례가 있다.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은 1분만 지각해도 시험기회를 박탈한다. 전교 1등 운운하지만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법은 만명에게만 평등한 게 아니라 모두에게 평등하다. 의료계는 특권을 바라지 말고 이 나라 국민이라면 의료 사각 지대가 된 농어촌 의료 현실을 직시해 공공의료 확충에 앞장서야 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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