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영암의 어제 그리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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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사진으로 본 영암의 어제 그리고 오늘

⑦삼호읍 변천사

삼호면 난전리(1991년)
삼호읍은 호구총수(1789년) 등에 의하면 곤미현(昆湄縣)의 곤일종면(昆一終面)으로 가내항 등 47개 마을을 관할하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개편됐다. 2003년 5월 1일 인구 2만명이 넘어 영암읍에 이어 영암군의 두 번째 읍으로 승격했다. 영암군 인구의 39.6%를 차지하는 반면 영암읍은 15.4%에 불과하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좁은데다 척박하고 궁핍하기 짝이 없던 삼호가 천지개벽한 것은 영산호(榮山湖), 영암호(靈岩湖) 등 인공호수가 조성되고 목포 내해(內海)에 둘러싸이는 등 지면 그대로 '三湖'가 된 뒤부터다. 또 그 계기는 영산강유역 농업종합개발사업이다.
삼호면사무소 준공(1983년)
삼호면사무소 준공(1983년)
1973년 4월 시작된 영산강유역 농업종합개발사업은 1단계(1973∼1979년)로 장성호 나주호 담양호 광주호 등 4개 댐이 건설된데 이어, 2단계(1976∼1998년)로 1981년 2월 28일 오전 11시 영산강 하굿둑 최종물막이 공사가 준공되면서 삼호를 4천351m의 방조제로 무안군 삼향면과 연결하게 하는 등 서남권의 지도를 바꿨다. 또 3단계(1985∼2004년)로 영암호와 금호호 방조제가 건설되고 간척토지 1만2천500㏊와 배후농경지 8천500㏊ 등 모두 2만1천㏊가 추가 개발됐다.
삼호면사무소(1991년)
삼호면사무소(1991년)
바로 이 대규모 간척지에 대불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데 이어, 삼호읍 용당리 가지도(可之島) 100만평에 현대삼호중공업(옛 한라조선소)과 해군 제3함대 사령부가 들어섰으며, 산호리에 대불대학교가 개교하면서 삼호읍은 지금의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룬다.
반면 삼호읍은 목포와 맞닿아 산업단지가 개발되면서 제대로 된 도심기능 확충이 이뤄지지 못한채 팽창하다보니 개발이익의 타 지역 유출이 심각하다. 또 군청소재지로서 구심력을 잃은 영암읍은 동부권에 치우쳐 갈수록 쇠락해가고 있다. 영암읍과 삼호읍으로 구분되는 동서의 개발불균형 문제는 영암군의 최대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사진제공 = 영암군청 강평기
삼호면 난전리(1991년)
삼호면 난전리(1991년)
삼호읍 승격 개청식(2003년 5월 1일)
삼호읍 승격 개청식(2003년 5월 1일)






대불산단 주거지(2005년)
대불산단 주거지(2005년)
대불산단 주거지(2020년)
대불산단 주거지(2020년)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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