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미학, 말하는 자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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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미학, 말하는 자의 용기

김형두 전 영암군재향군인회장
옛날에 귀가 유난히도 큰 임금님이 살았다. 그런데 임금님은 자신의 큰 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궁궐 밖으로 백성들에게 알려지는게 너무나도 싫어서 임금님은 복두장(왕의 관을 다루는 기술자)에게 엄명을 내린다. 이 사실이 궁궐 밖으로 알려지면 복두장을 죽이겠다고. 그로부터 복두장은 사실을 말하지 못해 생병이 생기게 되고 급기야 참다못해 혼자 몰래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으로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해버린다. 그런데 그 후로 대나무 숲에서는 바람이 불어 대나무끼리 서로 부대끼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국 모든 백성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옛날에 허영심이 아주 강한 왕이 살고 있었다. 그 왕은 자기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온갖 진귀한 사치를 즐겼다. 이를 안 사기꾼 재단사가 궁궐로 들어가 자기는 세상에서 아주 귀한 옷을 만들 수 있는데 그 옷을 입으면 옷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왕은 아주 흡족하여 재단사로 하여금 입어도 보이지 않는 옷을 만들어 달라고 명령을 내리고 많은 상금을 준다. 사기꾼 재단사는 옷을 만드는 척하며 세월만 보내다가 어느 날 옷이 다 만들어졌다며 왕에게 옷을 입히는 시늉을 하고, 신하들과 시종들은 그 이상한 광경을 눈으로 보면서도 말 한마디도 못하고 그저 안절부절 하기만 하고 있었다.
옷을 입은 임금님은 너무도 자랑스러워 백성들에게 보여주며 뽐내고 싶어졌다. 궁궐 밖에 수많은 백성들이 왕의 신기한 옷을 구경하고자 모여들었다. 드디어 왕이 왕관을 쓰고 벌거벗은 채 나타나자 온 백성들의 눈이 휘둥그래졌으나 누구하나 눈앞에 펼쳐진 이상한 광경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갑자기 한 어린아이가 외쳤다. "왕이 발가벗었다!"
위의 첫 번째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경문왕 이야기를 각색한 전래동화이고 두 번째는 서양의 동화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실을 말한다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고 두려운 일인가 보다. 이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권력자가 그의 권위로 사람들에게 재갈을 물리기 때문일 것이고 다른 측면에서는 사실을 말할 용기 있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어쨋거나 위의 이야기들을 분석해보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보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는 '세상에 비밀은 없다'이다. 복두장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대나무 숲에 누군가가 몰래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비밀이 새어나갔을 것이고, 허나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이미 쉬쉬하며 임금님 귀가 보통이 아니게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 그 사람뿐만이 아니라 여러 백성들이 서로 드러내놓고 말만 하지 않았지 이미 다 알고 있다가 확실한 출처(임금님 귀를 직접 본 복두장)가 나오자 맘 놓고 사실을 즐겼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임금님의 열린 마음과 전략적 사고가 아쉬운 점이다. 귀가 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이를 인정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나는 귀가 크니 여러분들의 작은 목소리 하나까지 모두 들을 수 있다고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명분이 좋고 재치도 있으니 틀림없이 백성들은 커다란 나랏님의 귀가 자랑스러울 것이다.
'벌거벗은 왕'에서는 권력자의 아집과 독선을 본다. '내가 하면 모두 옳다'는 권력자들이 많다. 모두가 아니라고 비웃고 심지어 그 일이 권력자의 치부임에도 그는 보지 못한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해도 말이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말 한마디에 권력자의 위선과 치부는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사실은 '말'해야 하고 그릇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더구나 그런 말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어 버린다면 이 시대 우리의 최고의 가치인 민주주의는 없다. 말하는 사람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자.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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