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달사 현창사업 전남도와 정부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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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달사 현창사업 전남도와 정부가 나서야

조선 최초 의병장인 양달사 장군 관련 문헌집이 발굴됐다 한다. 도포면 봉호리 양금호씨가 간직하고 있던 '주부공휘승조파 문헌'이 그것으로, 여기에는 1765년에 발간된 여지도서와 1797년 호남절의록에 실린 양달사 장군의 기록들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실려 있다 한다. 고경명의 후손 고정헌이 편찬한 호남절의록에는 '참판 이기경이 전(傳)을 지었고 유선 윤득부가 묘지명을 지었으며 목사 임육이 행장(行狀)을 지었다'고 돼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한꺼번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밖에도 문헌집에는 1779년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한 이기경이 쓴 양해남남암공전, 도승지를 지낸 오연상의 묘갈명, 임연이 쓴 사장, 1777년 신사준이 쓴 유사, 홍문관 교리 기학경이 쓴 행록후서 등도 함께 실려 있다 한다.
현창사업회 출범 3년여 만에 값진 성과를 일군 이영현 사무국장은 문헌집 발굴의 큰 의미는 양달사가 영암성대첩을 거뒀음에도 당시 도원수와 방어사 등이 의병이라는 이유로 이를 일절 보고하지 않아 조정에서 아무런 포상을 받지 못했고, 이에 전라도 유생들이 300여년 동안 줄기차게 탄원서를 제출했음을 확인한 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문헌에서는 1777년 2월 전라도내 선비들이 관찰사에 올린 탄원서, 나주선비들이 관찰사에 올린 탄원서, 영암선비들이 군수(2건)와 암행어사(1건), 관찰사(1건) 등에게 올린 탄원서가 확인됐다. 특히 1777년 탄원서에는 제주를 제외한 전라도 전역의 선비 444명의 이름이 올라있고, 탄원서 대표도 나주사람이었다. 이들은 1555년 5월 25일 영암성대첩으로 왜구의 칼날에서 전라도를 구해 낸 양달사 장군의 위대한 공적을 기술하면서, 그럼에도 모든 공을 도원수 등이 가져가고 본인은 정작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다는 점을 소상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영현 사무국장은 발굴한 문헌집이 원본이 아니라 1958년 필사본이라는 점이 다소 아쉬우나, 1555년 을묘대첩이후 전라도민들이 온힘을 다해 역사 속에 되살려 놓은 양달사 의병장이 조선 최초 의병장이자 호국 영웅이라는 점을 전 국민에게 분명하게 각인시킬 필요성과 당위성을 자료로 확보하게 됐다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또 전남도교육감을 역임한 장만채 현창사업회장은 이번 문헌 발굴을 계기로 이제는 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 장군이 전라도의 위대한 의병장이자 호국 인물로 추앙받을 수 있도록 영암군과 전남도, 정부가 특별한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선 영암군부터 체계적인 현창사업 추진에 나서야 한다. 자료와 유적을 수집 보존하고 문화관광자원화 전략도 세워야 한다. 이를 통해 전남도와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야 한다. 오늘날 지역의 걸출한 역사는 소중한 자원이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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