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의병 양방매의 남편이자 의병장 강무경이 대구형무소에서 해방의 한을 풀지 못한채 1910년 32세의 청춘을 형장의 이슬로 순국하기 직전 썼던 글이다.
일제강점기 첫 여성 의병인 양방배 선생의 애국정신과 삶을 조명하는 치유축제가 오는 11월 12일 오후3시 금정면 유토길 133 신유토마을에서 '국사봉 의병 양방매 치유축제행사위원회'(위원장 강병연)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행사는 우승희 군수와 강찬원 의장, 최광표 영암교육장, 김한남 영암문화원장 등 기관사회단체장과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와 경과보고, 감사패 전달, 인간문화재 양승희 선생과 영암 어린이 제자들의 가야금산조 공연 등이 이어진다.
의병 양방매 선생은 1890년 금정면 청룡리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986년 96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70여년을 친가인 금정면 남송리와 국사봉 주변의 야생 약초로 치유하며 숨어서 살아야하는 또하나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양방매 여사는 생전 "남편과 함께 죽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말해왔으며, 금정면 반계마을과 국사봉(614m) 산속에서 항상 수저를 가지고 다니면서 밥을 먹고 국사봉 일대를 생활의 근거지로 약초와 주먹밥으로 연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의병 양방매 선생은 특히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중 한 사람인 강무경(1878~1909)의 부인으로, 남편을 따라 의병이 되어 항일전에 나섰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이자 부부의병, 가족의병(오빠 양성일)으로 1909년 3월부터는 심남일 의병장의 선봉장인 남편을 따라 금정, 장흥, 화순, 강진 등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1909년 10월9일 화순 풍치의 동굴에 숨어있다 심남일 의병대장, 남편 강무경 의병장과 함께 체포되었으며, 남편 강무경 의병장은 1910년 대구형무소에서 순국,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의병 양방매 선생은 사망 후인 1995년에 국립현충원에 남편과 합장됐으며 2005년에는 건국포장을 받았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