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前 영암군의회 의원 |
그런 아버지가 요즘 아주 즐거우시다. 분주하고 곡절 많았던 농촌 들녘이 마침내 휴식을 누리는 이 평화로운 계절 때문이 아니다. 아버지가 선생님이 된 덕분이다. 아버지는 귀농귀촌인 짚풀동아리에 2년째 선생님으로 초대받아 일주일에 한 번 새끼를 꼬고 망태며 소쿠리를 짜신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따뜻한 비닐온실에서 당신에게 부족한 마무리 매듭짓는 일을 부지런히 연습하신다.
지방이 소멸위기란다. 진작에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농촌이 이대로 가다가는 성장률은 떨어지고 노인돌봄 같은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해 파산위기에 내몰릴 것이라고 부르댄다. 청년을 지원하는 일은 미래를 위한 투자고 노인을 돕는 일은 비용이라며 주판 튕기는 이들의 거친 언설을 듣고 있자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청춘도, 배움의 기회도, 제때 치료받을 기회도, 남들 다 누리는 문화적 혜택까지 똘똘 뭉쳐 자식과 지역공동체에 쏟아부은 어른들이 마주하는 대접이 고작 이런 모양이란 말인가? 이미용권 백원 택시 천원 버스 트로트가수 무료공연 같은 시혜로 할 바를 다했다고, 이만하면 됐다고 퉁치는 세태가 야멸차다.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율 OECD 1위, 65세 이상 치매유병율 9.18%, 65세 노인의 절반이 심각한 영양부족에 처해 있다는 지표가 웅변하고 있는 현실을 똑바로 보자. 그나마 이같은 통계조차 도시 노인층을 표본으로 한 결과이니 농촌노인의 실상은 얼마나 암울한 상황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부양의무자인 자식마저 부모를 떠나고 그들마저 허덕이고 있는 형편에 비추어 볼 때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설계하고 실현할 책임은 누구보다 국가와 지방정부에 있다. 무엇보다 어른들의 여생이 존엄하고 명예롭게 지켜져야 한다. 그 길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먼저 잘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 젊어서 못했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짚풀 나무 공예, 김치 반찬 된장 간장 제조, 화초 야채 재배 같은 일자리를 구상해보자. 이를 가능하게 할 동아리와 마을농장을 발굴하고 키워야 한다. 더 나아가 지역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해서 미래세대에 전승하고 특색있는 고향사랑 기부금 답례품 공급기능도 감당하게 할 수 있다. 이같은 새로운 노인일자리는 일정한 경제적 소득을 보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어른들의 사회적 역할도 되찾게 함으로써 자존감을 크게 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건강한 노후 유지다. 무엇보다 발병 전 진단과 예방이 긴요하다. 우리군에서 추진 중인 마을주치의제가 그 기능을 십분 발휘할 것으로 믿는다.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일은 심리적 병증인데 다름 아닌 고립과 고독이다. 마을에서 살다보면 어른들은 자녀와의 단절, 경제적 빈곤, 질병 따위로 관계가 끊어지고 소통에서 고립되는 경우를 흔하게 보게 된다. 이를 회복할 방안은 지역공동체 돌봄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을과 공동체 안에서, 교회와 절 성당에서 교류하고 함께 노동하는 것이 요양원이나 병원에서보다 한결 안정된 일상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어른들을 위한 쉼과 문화 향유의 기회를 넓히는 일이다. 기찬랜드와 폐업한 월출산 온천, 다양한 펜션 등을 활용해 군민휴양시설을 구축하면 좋겠다. 관내 문화시설과 도서관, 작은영화관, 공연장, 각급 공연단체, 스포츠시설을 상설 인프라로 재조합해서 군민 누구나 특히 어른들이 연중 보고 느끼고 즐기는 문화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면 노후가 얼마나 풍성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어른들의 삶을 기록하자는 것이다. 수단도 방법도 다채롭다. 구술, 유튜브, 다큐멘터리, 연극, 그림 등으로 기록하고 학교와 예술인, 유튜버, 극단, 지역신문과 협업체계를 갖추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성과물은 지역축제와 SNS, 신문지면, 무대, 전시장을 통해 지역민과 공유하면 된다.
나는 최근에 정지아가 쓴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내 아버지의 팔십 년 세월과 마주하는 용기를 얻었다. 한 주 내내 마음이 떨리고 가슴이 울렁거려서 몸살을 앓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즐거우면 자식인 나도 즐거워진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