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 前) 영암군 신북면장 前) 전라남도 노인복지과장 前) 완도부군수 |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단군왕검이 BC2333년 건국한 고조선이고 단군왕검은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곰에서 사람으로 태어난 웅녀와 결혼하여 태어난 신화속 인물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고조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가 아니고 단군왕검도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그 보다 훨씬 이전인 BC7200년에 중국대륙에 세워진 환국(桓國)으로 3,301년 동안 지속되었고 그 뒤를 이어 배달(倍達)이 1,565년 동안 이어졌으며 그다음에 등장한 국가가 단군조선(檀君朝鮮)으로 2,096년 동안 지속되어 우리나라는 최초 국가인 환국으로부터 9,200년에 이르는 유구하고 장엄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은밀하게 전해져 오던 한국 상고사를 모아 1911년 운초(雲樵) 계연수(桂延壽) 선생이 편찬한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의 역사가 중국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의하면 중국의 역사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 첫 번째 임금인 황제 헌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헌원은 원래 우리 민족이 세운 배달국의 14세 임금인 치우천황의 신하였으나 헌원이 치우천황에게 반란을 일으키자 치우천황이 헌원을 제압하였음에도 중국은 이러한 역사를 거꾸로 뒤집어 헌원이 치우천황을 사로잡아 죽인 것으로 기록하면서 자기네들의 역사가 동북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로 날조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무제가 한반도에 한사군을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한사군과 관련된 기록은 중국의 사마천이 쓴 「사기」에 "한 무제가 조선을 평정하고 사군을 설치하였다"라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고 중국 사서에는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 지금의 요령성과 하북성 일대로 기록하고 있어 한반도에 한사군의 존재 자체가 불확실함에도 낙랑군(대동강 유역), 현도군(압록강 유역), 진번군(황해도), 임둔군(함경남도)라고 지역까지 특정하면서 기정사실화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도 마찬가지다. 일본문화는 한반도에서 전수된 것으로 한반도는 일본문화의 친정집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백제가 망한 후(660년) 한반도와의 문화적 종속 관계를 희석하기 위해 '왜(倭)'라는 나라 이름을 '일본'으로 바꾸고 4세기 후반에 신공황후가 한반도 남부지역 가야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백제, 신라, 가야로부터 조공을 받고 지배했다고 주장하면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한 것은 침략이 아니라 옛 땅을 회복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면 왜 우리의 역사가 이렇게 왜곡되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중화 패권주의 사관과 일제의 식민주의 사관이 초래한 결과다. 중국은 일찍부터 중국이 동북아의 중심 국가이자 동북아 문명의 주체라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우리나라의 상고사를 그들의 역사로 편입하는 역사 왜곡을 자행해 왔다.
일본에 의한 역사 왜곡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을 강제 병탄한 일제는 우리 역사를 축소 왜곡하기 위해 일본의 사학자들을 대거 조선으로 데려와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고 '조선사'를 만들었는데 한민족 상고사를 송두리째 뽑아 없애 버리고 근세 조선과 고려사 위주로만 기술하면서 한민족사는 2,200년 전 한(漢)나라의 식민지에서 시작되었다고 날조를 하고 일본의 역사는 2,600년 전으로 늘려 우리 역사가 일본보다 짧은 것으로 왜곡한 것이다. 우리 역사가 우리 손으로 씌여지지 못하고 침략자들의 손에 의해 그들의 언어로 날조되는 기가 막힌 일을 당한 것이다. 일제가 우리 역사를 왜곡했더라도 우리나라 사학자들이 해방 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았어야 함에도 우리나라 주류 강단사학자들은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일제 식민사학에 동조해 왔다. 식민사학을 옹호한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李丙燾)다. 이병도는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국내 최초의 대학 출신 역사학자로 이병도에게 영향을 준 일본 학자는 '요시도 도고', '쓰다 소우키치' 등인데 이들은 일제 식민주의 사학의 핵심 인물들이다. 이병도는 해방 후 민족사학의 거목들이 납북되자 한국 역사학계를 좌지우지하면서 제2, 제3의 식민사학자를 양성하여 식민사학의 뿌리를 오히려 더 깊게 했다.
최근에 광주와 전남·북이 공동으로 발간하는 「전라도 천년사」 내용에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일본부 지명이 등장하는 등 일제의 식민사관으로 왜곡되었다고 논란이 일고 있어 발간이 중단 되고 있다.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식민사학 독버섯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 잃어버린 민족의 상고사를 되찾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역사광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