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군 독립운동사, 슬프다!
검색 입력폼
 
오피니언

영암군 독립운동사, 슬프다!

이영현 양달사현창사업회 사무국장 영암학회 회장 소설가
지난해 8월 17일 필자는 이곳에 1930년 「영암군세일반」을 비롯한 일제 강점기 사료들과 독립운동 판결문 등을 묶어 「일제시대 영암군 사료집」 발간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여러 경로를 통해 「영암학회」 이름으로 제안하면서 2023년 본예산으로 지원해 주기를 바랐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서 추가경정예산 때 보자고 했다. 언젠가는 지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오늘은 필자가 지금까지 조사한 영암군 독립운동사를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국가기록원의 독립운동 판결문과 당시 언론보도, 고등경찰요사, 법원들의 신문조서, 일본 각 도서관의 자료, 국내 독립운동사 사료집, 일제강점기 사회사상 운동자료, 1953년 영암군향토사와 1998년 영암군지, 각종 논문, 보훈청의 공적조서, 일부 족보 등을 참고하여 지금까지 필자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영암군민이 주도하거나 참여한 독립운동 사건(필자가 임의로 붙인 명칭도 있음) 및 일제로부터 피해를 입은 독립운동가의 숫자는 다음과 같다.
3·1독립만세운동(1919. 4. 10) 28명(영암공원 3·1운동 기념탑에는 3명이 누락돼 있음), 한성임시정부 설립(1919. 4. 23) 1명, 독립국민당 사건(1919. 11. 4) 1명. 영암보통학교 휴학동맹(1922.7.15.) 5명, 일본 불령사(不逞社) 사건(1923. 8. 1.) 1명, 목포 제유(製油) 쟁의 동조자(1926. 2. 25) 1명,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가입자(1926. 12. 3) 1명, 제3차 공산당 사건(속칭 ML당 사건)(1928. 2. 3) 1명, 광주고등보통학교 휴학동맹 1명, 광주학생사건(1928. 6. 25) 11명, 제4차 공산당 사건(1928. 7. 5) 3명, 전남소년연맹 사건(1928. 8. 4) 2명, 영암 설화(舌話) 사건(1928. 8. 20) 1명, 전라남도공산당청년회 사건(1928. 12. 29) 1명, 목포공립상업학교 격문 반포 사건(1929. 11. 9) 3명, 재외영암인유학생 격문 반포 사건(1930. 1. 26) 8명, 농민조합 창립 취지문 반포 사건(1930. 6. 9) 1명, 조선 공산당 재건 사건(1930. 9. 8) 1명, 영암농민조합 창립 준비사건(1931. 11. 7) 2명,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1932. 6. 4) 73명, 적색농민조합 사건(1934. 1. 27) 5명, 일장기 말소사건(1936. 6. 13) 1명, 허위사실 유포자(1937. 11. 3) 9명, 지원병 거부자(1940. 1. 12) 2명, 신사에 대한 불경죄(1941. 3. 2) 2명, 무등독서회 사건(1943. 3) 1명, 광복군 참전(1943. 12.) 1명, 천황에 대한 불경죄(1945. 5. 12) 1명, 미국 첩보요원(1945. 5. 22) 1명 등 총 29개 사건에 연인원 170명이다. 1910년 이전 항일의병 유공자들과 1906년 옥천면이 해남군으로 이속되면서 해남에서 관리하고 있는 양한묵 선생, 3·1운동 유공자 중 본적이 강진인 분들을 제외하더라도 전국 어느 자치단체에 못지않게 많은 선현들이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이 중에서 세 가지 사건에 관련된 독립운동가는 조극환, 유용희(일명 유혁), 곽명수, 최판옥, 최규창 등 5명이고, 김준연, 한현상, 문학연, 최상호, 최규문, 조문환 등 6명은 각각 2개 사건에 관련돼 있다. 수형생활이 가장 길었던 사람은 조극환(미군정기 3년 포함)으로 총 4회 8년 3개월 형을 언도받았고, 유용희 3개 사건에 7년 4개월, 낭산 김준연 7년 순이다. 위의 170명 중 2개 이상 사건에 관련된 분들을 1명으로 줄이면 일제 36년간 우리 영암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 독립운동에 헌신한 사람은 154명이나 된다.
2023년 2월 말 현재 보훈청에서 관리하는 영암의 독립유공자는 총 94명. 이 중에서 1910년 이전 의병 활동 유공자인 이복근, 김치홍, 정관오, 김선중, 유시연, 양방매 6명과 1905년 을사조약에 통분하여 자결한 이상철 선생을 제외하면 총 87명이다. 154명 중에서 약 57%인 87명은 독립운동 유공자로 지정되어 후손들이 조금이나마 혜택을 받고 있지만, 67명은 아직도 독립운동가로 지정되지 못하였거나 아예 신청조차 한 적이 없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독립운동의 선구자 한남수 선생과 불령사 사건 관련자 한현상 선생처럼 후손들이 아예 신청하지 못해서 독립유공자가 되지 못한 경우가 약 15%. 일제 강점기 사상 전향이나 해방 후 부역 행위 등으로 지정받지 못한 경우가 약 75%, 보훈청에 이의 신청 등을 하고 있는 경우가 약 10%다.
전라남도에서는 지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독립운동 미서훈자 발굴 및 서훈신청 용역'을 진행하였다. 용역사는 광주전남연구원, 차제에 제대로 조사해서 독립유공자로 일괄 신청하겠다고 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코로나로 방문을 거절해서 이메일로 이의 신청 자료를 보냈지만, 오늘까지 답변 한 마디 없다.
독립운동 사료집 하나 없는 우리 영암군.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30여개의 사건 중 여남은 건만이라도 제대로 알려지게 될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오늘따라 3월 하늘 보기가 유난히 슬프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오늘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