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가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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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꾸기

이진 前) 영암군 신북면장 前) 전라남도 노인복지과장 前) 완도부군수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겨울이 물러가고 새봄이 돌아오자 겨우내 움츠렸던 초목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청초하고 싱그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농부들은 어김없이 농사일을 준비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필자도 요즘 소일거리로 가꾸고 있는 조그마한 텃밭에 올해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텃밭 규모가 작아서 농기계를 사용할 여건이 되지 않아 직접 파고 골라서 두둑을 만들고 씨앗을 파종하고 잡초를 제거하면서 먹거리를 재배하고 있는데 그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다.
옛 어르신들 말씀이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텃밭을 관리하다 보니 그 말씀의 의미가 되새겨지고 새삼 자연의 섭리에 겸손해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농사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이 작물은 심고 물만 주면 잘 자라겠지 하는 오만한 생각으로 시작한 나의 텃밭 가꾸기는 여지없이 실패를 거듭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한 톨의 씨앗이라도 생장 기온에 맞게 시기를 잘 맞추어 정성 들여 심어야 하고 발아된 씨앗이 잘 자라도록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은 물론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잡초를 제거해야 하고 기회만 있으면 작물을 괴롭히는 병해충 방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등 작물에 쏟아야 하는 정성이 마치 우리가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실패를 통해 깨달았다.
농사를 지을 때 농사지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텃밭을 가꾸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작물 키우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 어떤 경험도 옛 어르신들이 일러주시는 농사 격언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아카시아 꽃피면 고추 모종을 옮기고 참깨를 심어야 한다", "배꽃 필 무렵 추위가 한 번은 더 있다", "뻐꾸기가 처음 울고 장날이 세 번 지나야 풋보리를 베어 먹을 수 있다", "들깨는 해뜨기 전에 털어야 꼬투리가 안 부러져 일이 수월하고 참깨는 해가 나서 이슬이 말라야 꼬투리가 벌어져 잘 털린다"라는 격언 등은 오랜 세월 속에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 말씀들이다.
텃밭을 가꾸다 보면 날씨에도 큰 관심을 갖게 된다. 가뭄으로 비가 내리지 않아 작물들이 힘들어할 때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마치 내가 기르는 작물들이 환호하는 소리로 들려 자다가도 일어나 창문을 열고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기도 한다. 이는 나만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모든 농부들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텃밭을 가꾸기 전에는 시장에 나오는 깨끗하고 질 좋은 농산물들을 보면 누구나 농사를 지으면 저 정도는 쉽게 생산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텃밭을 가꾸다 보니 질 좋은 농산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농부들이 쏟아 붓는 정성과 노력, 그리고 실패와 좌절을 이겨내야 하는 농부들의 애환을 미처 몰랐던 겸손하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작물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토양, 물, 햇빛, 그리고 바람이 있어야 한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정이라는 건강한 토양,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물, 햇빛), 그리고 사람과의 소통(바람)을 통한 건전한 인격이 형성되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라도 결핍된다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텃밭에 자라는 잡초도 우리네 인생과 비교된다. 텃밭을 가꾸다 보면 우리가 재배한 작물들은 병해충에도 약하고 여건이 조금만 좋지 않아도 죽거나 시들해 지지만 잡초는 왜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고 병해충에도 강한지 의구심을 갖게 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잡초들을 자꾸 제거하다 보니 잡초들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강한 생존력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 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강인해지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텃밭을 관리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고생 끝에 얻어진 친환경 농산물을 철 따라 외지에 있는 자녀들에게 보내주고 이웃들과 나눔을 함께 하면서 얻는 보람은 생활의 큰 즐거움이 되고 있고 힘든 텃밭 일을 하다가 흐르는 비지땀을 손으로 훔치면서 마시는 한잔의 막걸리는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로수와 같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우리 삶이란 우리가 최종적으로 돌아가야 할 자연에 순응하면서 욕심부리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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