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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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모아 고향

김세훈 영암군청 고향사랑팀장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눈앞이다. 1970년대 태어나 소위 'X세대'로 불리며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내게 명절은 도장처럼 하나의 인상(印象)으로 각인돼있다.
어릴 적 명절이면 '아등바등' 가까운 친척들과 20시간 이상 승합차를 타고 고향을 찾곤 했다. '오순도순' 오랜만에 만난 피붙이들과 얘기를 나누는 길은 즐거웠다. '구깃구깃' 차에 몸을 접고 장시간을 버텨야 하는 여정은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다.
피곤보다는 즐거움이 컸나 보다. 명절이면 그 피곤하고 즐거운 여행을 기쁘게 반복했으니까. 고향 사람과 만나서 주고받는 정에 대한 굶주림, 내 DNA에 깊이 새겨진 향수병이 명절 때마다 도졌는지도 모르겠다.
마흔 살이 다 돼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10년을 보낸 지역은 어릴 적 고향의 모습이 없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끊겼다. 청년은 먹고 살길을 찾아 도시로 떠났다. 마을회관에는 70대 어르신이 '막내' 소리를 들으며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수많은 마을이 사라질 위기다. "에휴" 마을주민의 한숨에 모든 현실이 담겼다.
모두 알고 있듯, 안타까운 한숨의 바탕에는 '수도권 인구 집중→지역 인구 저출산·고령화 및 감소→지방 세수 감소→지역 활력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없을까. 공무원으로서, 담당자로서, 고향을 사랑하는 지역민으로서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고향사랑기부제'에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침체된 지역의 활력을 찾기 위해 도입됐다. 살고 있는 주소지를 제외하고 고향이나 인연 지역에 일정액을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답례품까지 받을 수 있는 제도다.
1인당 한 해 500만원까지 기부할 수 있고, 지자체는 감사의 의미로 기부금의 30% 내에서 답례품을 줄 수 있다. 10만원 기부하면 전액 세액공제되고 3만원가량의 답례품도 받을 수 있다. 수익률 130%의 '2023년 최고의 금융상품'이랄까. 기부받은 지자체는 기부금을 주민 복리 증진, 지역 발전 등에 쓸 수 있다.
최근 영암군은 주민과 공무원이 참여하는 '고향사랑 기금사업 아이디어 공모'를 마쳤다. 임신·출산 여성이 병원 갈 때 무료로 이용하는 '해피맘 택시', 전세버스로 마을 어르신의 무료 영화 관람을 지원하는 '엄니, 영암극장 가시게' 등 사업이 크게 주목받았다.
지역과 지역민을 생각하는 제안자분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드린다.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 영암군은 접수 받은 다양한 제안을 정책으로 다듬는 중이다. 10월 기금운용심의위원회를 거쳐 기금사업을 확정하고, 내년부터는 기금을 집행할 계획이다.
특히, 고향사랑기부제의 취지에 맞게 지역 소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기금사업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아이 키우기 좋은 영암', '어린이 친화도시', '청년 활력 도시'를 견인할 사업들이다. 이 밖에도 취약계층 뒷받침과 낙후된 지역 개발, 서남해안 생태힐링 문화도시 인프라 구축 등 사업도 모색되고 있다.
누군가는 "고작 10만원 기부로 바뀐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이런 분들에게는 일본의 경험을 들려주고 싶다. '고향납세제'의 이름으로 먼저 고향사랑기부제를 실시한 일본의 2022년 모금액은 8조7천억이 넘는다.
이 기금으로 한 도시는 낡은 동물원을 한 해 200만명이 찾는 일본 최고 동물원으로 바꿔냈다. 다른 한 도시는 전국지명도를 얻으며 환경보호 캠페인까지 이뤄냈다. '고작 10만원'으로 불릴지 모르는 기부가 모여 일궈낸 기적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기부자들의 소중한 티끌들을 모아 태산보다 더 커다란 고향을 가꿀 수 있다. '티끌 모아 고향', '티끌 모아 영암'을 이루는 기적의 주인공으로 나서주시라고 여러분에게 머리 숙여 부탁드린다. 영암에 닿은 기부자의 마음을 잘 알기에, 단 한 푼이라도 투명하고 소중하게 쓸 것을 약속드린다.
승합차에 몸을 싣고 설렘으로 맞이했던 어릴 적 명절이 그립다. 그때의 고향과는 다르겠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모두에게 돌아갈 고향이 있기를.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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