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어도 ‘농자는 천하지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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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상이 바뀌어도 ‘농자는 천하지대본'

김 재 원 전남도지사 정책보좌관

‘농자는 천하지대본(農者 天下之大本)’이라 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농업을 숭상해 왔다. 그래서 산업의 기반을 농사에 두어왔다. 농자는 뿌리이고, 시작이었다. 또 농업은 인류역사에서 산업의 시작이고 토대였다.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두말할 것 없이 인간이 먹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농업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식량을 공급하는 생산적 기능 외에도 생태계 보존, 홍수 조절 기능을 지니고 있다. 온도와 습도 조절, 대기 정화, 전통문화 계승 등의 효과도 있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이산화탄소 감축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이처럼 농업은 인류의 생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산업이다. 그러기에 아무리 사회가 발전한다 해도 농업의 가치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 비중이 더 높아갈 것이다.

그런데 농자(農者)의 시위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벌써 수년째다. 그것도 무엇보다 가치 있다는 식량을 난장에 내다놓고 항의를 하고 있다. 이들의 외침은 항의 차원을 넘어섰다. 절규에 다름 아니다.

피땀 흘려 가꾼 나락을 쌓아놓고 시위를 해야 하는 농민들의 심정이 오죽할까.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이처럼 시위는 해마다 되풀이되지만 농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아진 게 별반 없다. 대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희망은커녕 갈수록 상황은 절망 쪽으로 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야적 시위
올해 벼 수확량이 크게 늘었다. 햇살이 좋은데다 큰 비바람도 없어 병해충이 줄어든 덕이다. 그 결과 수확량이 지난해보다 무려 7만3000톤 늘었다. 게다가 지난해 미처 소비하지 못한 재고물량이 9000톤이나 창고에 보관돼 있다. 이게 쌀값 하락으로 연결되고 있다.

요즘 산지 쌀값은 80㎏들이 한 포대에 13만7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이맘때 15만5000원에 비할 때 폭락에 가깝다. 지난 10월말 14만3000원에 비해서도 크게 떨어졌다. 공급 과잉이 쌀값 폭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식생활 변화도 쌀값 하락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꾸준히 줄고 있다. 지난 1990년 1인당 쌀 소비량이 119㎏이었으나 2003년 83.3㎏, 2005년 80.7㎏, 2007년 76.9㎏으로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이명박정부 들어 대북 쌀 지원이 끊긴 것도 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때 해마다 재고물량 가운데 40∼50만 톤씩 북한에 지원해 왔다. 그런데 대북 지원이 끊기면서 재고량이 그대로 쌓이고 있는 것이다.

최저생산비 보장 ‘핏빛 절규’
우리 농민들의 야적 시위는 이런 복합적인 요인을 안고 있다. 전남도청과 농협전남지역본부 앞, 그리고 군청 앞에서 펼쳐지는 야적 시위는 정부에 대한 농민들의 상징적인 항의 표시인 셈이다.

농민들의 요구사항은 재고미 전량 수매, 대북지원 재개, 최저생산비 21만원 보장, 공공 비축미 매입 확대 등으로 요약된다. 특히 해마다 재고량 해소에 도움이 되던 대북지원이 끊기면서 엄청난 재고가 쌓인 만큼 쌀 대북지원 재개와 함께 이의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남도에서는 400억원을 들여 2만6000톤을 사들이고 농가에 경영안정대책비 470억원도 지원키로 했다. 농협미곡처리장에서 보유하고 있는 재고미를 쌀값이 안정될 때까지 시장에 방출하지 말도록 요청도 해놓고 있다. 이에 따른 손실금은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부담하는 방안도 정부에 건의해 놓은 상태다.

이제 정부의 현실적인 대책이 나와야 할 차례다.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일시적으로 도입됐던 쌀 생산조정제도 그 방안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는 휴경지나 일반 논에 벼 대신 사료작물이라든지, 비상업적 작물을 심으면 정부가 쌀값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벼와 같은 시기에 재배되면서도 자급도가 낮은 콩, 옥수수 등을 대신 재배할 경우 작물별 소득차액을 보전해 주자는 것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고품질의 쌀 생산을 위해 친환경 유기농 쌀 재배도 정책적으로 늘려나가야 한다. 쌀 시장을 해외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

정부의 근본대책 마련 절실
정부는 실제 생산량과 예상량의 차이인 23만 톤을 추가 매입해 시장에서 격리시킬 방침이다.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추가매입 물량을 일정기간 시장에 방출하지 않겠다는 복안도 밝혔다.

그러나 이는 농민들의 기대수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 재고량이 많이 남아 있고 소비대책이 제대로 서있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매입량 확대조치는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근본 처방책이 나와야 한다. 경영안정대책비를 늘리고 지난해 재고쌀을 시장에서 완전 격리시켜야 한다. 대북지원도 즉각 다시 이뤄져야 한다. 저소득층에 지원하던 현물 쌀을 차상위계층까지 확대하는 등 쌀 소비대책도 다각도로 마련돼야 한다.

시간이 없다. 정부는 쌀농사야말로 농촌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을 깊이 새기고 쌀값 안정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농민들의 요구는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의 부모, 형제들의 외침이다. 국민 모두가 쌀 생산과 소비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분명 ‘농자는 천하지대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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