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를 부수는 지혜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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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부수는 지혜가 아쉽다

중국 당나라 태종 때 임금의 침전(寢殿) 앞 나무에 지어진 까치집(鵲巢)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그것이 길조(吉兆)냐 아니냐에 관한 논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둥지 두 개로 지어진 까치집은 그 사이를 통하는 터널모양의 이어짐이 마치 장고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고 한다. 더욱이 그 까치는 보통 까치가 아니라 흰색(白鵲)이었다. 백작은 황제(皇帝)를 의미하기에 기묘한 구조의 까치집은 당태종과 황후의 금슬이 더욱 좋아짐을 뜻한다며 임금에게 ‘경하(慶賀) 드린다’는 아첨과 아부의 상소가 줄을 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의 예상과 달리 태종 이세민은 까치집을 부수게 하고 까치는 멀리 날려 보냈다. 근거도 없는 믿음으로 민심과 임금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국정을 혼란하게 할 뿐 아니라 아첨꾼만 난무하게 하는 폐해를 낳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상서’(祥瑞)에 관한 다른 이야기도 있다. 백제 31대 마지막 임금 의자왕에 관련된 것이다.
의자왕 20년 2월 어느 날 궁궐에서 개가 짖으며 가는 곳을 따라 땅을 파보니 뜻밖에도 거북이가 나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거북이 등에 쓰인 글귀였다. ‘百濟 同月輪, 新羅 如月新’(백제는 만월과 같고 신라는 반달과 같다.)
이를 놓고 신하들과 무속인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하지만 곡학아세하지 않는 정직한 신하들과 무속인들은 무슨 징조냐고 묻는 의자왕에게 사실대로 답했다. ‘달이 차면 기울고 초승달은 점차 만월이 되듯 백제는 멸망하고 신라는 융성하게 됨을 암시’한다고 아뢴 것이다.
의자왕은 격분했고, 사실대로 말한 모든 이들을 참했다. 이때부터 궁궐에는 상서를 놓고 아첨하고 아부하는 이들로만 들 끌었다. 만월은 백제의 국운융성이요 반월은 신라의 미약함을 뜻한다는 허세만 판치게 된 것이다. 결국 거북이 사건이 난 뒤 7개월 만에 백제는 멸망의 길에 접어들었다.
근래 몇 주 동안 군청의 두 과장이 모 언론에 특별기고 형식으로 실은 글이 가관이다. 모두 본지가 문제점을 지적한데대한 반론차원인 모양이나 독자들로선 맹목적인 ‘칭송’내지는 ‘찬양’에 가깝기 때문이다.
본지가 지적한 ‘방과 후 학교’ 예산지원 부족문제는 기자가 단독으로 기획한 문제가 아니라 영암교육지원청이 직접 군의회에 예산지원을 해달라며 협조 요청한 문제다. 전남도내 다른 시군과 달리 영암은 관련 예산지원이 전무했거나 크게 인색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본지가 이런 사실들을 지적하며 대책을 세울 것을 주문했을 뿐인데 군청의 과장은 엉뚱하게도 군수의 교육 관련 치적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그 어디에도 방과 후 학습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체계적인 지원 대책은 끝내 외면했다. 아마도 군수에게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할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기찬들 쇼핑몰’에 대한 본지의 보도를 염두에 둔 듯한 군청 과장의 기고문은 군수 부인이 회장인 ‘달마지회’에 대한 찬송가를 듣는 듯하다.
본지의 보도취지는 쇼핑몰이 군 직영이면서도 실제로는 달마지회가 그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실태와 그로 인한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간부공직자 부인들의 모임인 달마지회가 영암지역 농특산물의 유통에 지대한 공헌을 해온 사실에 대한 부정 또는 비판이 결코 아닌데도 그는 보도취지를 착각했다. 쇼핑몰 운영개선 대책에 대해서도 끝내 외면했음은 물론이다.
두 과장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김일태 군수가 민선 4,5기 통틀어 사상 처음으로 행정잘못을 군민들에게 사과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다름 아닌 간부공직자들의 소신행정 부재가 낳은 결과다.
김 군수도 말했듯이 군수라고 해서 군정을 샅샅이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과장들은 다르다. 소관부서의 일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고, 문제점과 그 대책도 분명히 파악하고 있다. 그렇기에 군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가장 먼저 과장이 나서 잘못을 지적해야 옳다. 때론 좌천도 불사하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두 과장의 사례를 보며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 이유다.
김 군수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이나 군민들로부터 좋은 말만 들으려 해선 안 된다. 군청 내에는 소신은 없으면서 아첨과 아부로 자신을 과시하고 문제가 생기면 ‘시켜서 한 일’이라며 군수 탓으로 돌리는 공직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러면 ‘죽은 조직’이 된다. 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의자왕의 우를 범하지 않고 파소방작(破巢放鵲)했던 당태종의 작소지교(鵲巢之敎)를 깊이 되새겨 보길 적극 권한다.
문태환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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