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불이(理事不二), 귀재원융(貴在圓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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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불이(理事不二), 귀재원융(貴在圓融

월우 스님 도갑사 주지

‘이사불이(理事不二, 이치와 일은 둘이 아니다), 귀재원융(貴在圓融, 그 존귀함은 원융에 있다)’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스님의 법어다.
법안스님은 선문 5종의 일파를 이뤘다. 그 종풍의 특징은 화엄철학을 선의 실천으로 구현시키는 데 역점을 두어, 선과 교의 융합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법어가 전한다.
손발이 움직이는 것은 일(事)이요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이치(理)다. 발이 움직이는 것을 마음이 알아차리고, 마음이 발이 앞으로 가기를 원하자마자 앞으로 갈 때 몸과 마음은 분명히 다르지만 개별적으로 놀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고 해서 이사불이(理事不二)라고 한다.
몸이 마음에 따라, 마음이 몸의 사정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 때, 둘이 원만하게 융화하는 것이니, 이를 귀(貴)한 것이라 했다.
승가에서 수행하는 승려를 이판승(理判僧)이라 하고 수행하는 승려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공부에 필요한 제반사를 맡아 수고하시는 스님들을 사판승(事判僧)이라고 불렀다. 이판승은 물론 수행을 충실히 하면서도 사판승이 일하는 방법들을 연구개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판승은 이판승들이 공부함에 필요한 것을 제공해 공부에 지장이 없도록 도왔다. 이 관계가 원만히 진행될 때 이판과 사판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 관계가 보완 관계이므로 ‘이사불이’라 하고, 보완이 원만히 진행될 때 이를 존귀한 것이라고 한 것이다.
경영주와 노동자와의 관계도 이와 같다. 요즈음 사회에서 경영주와 노동자간의 갈등이 심한 것은 원융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어려움이다. 경영주는 이판이고 노동자는 사판이다. 이들은 불이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이 개별적인 권리주장을 하다 보니 자연히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원융하지 못해 귀한 것이 아니다. 연구실에서 종사하는 연구가들이 이판에 속하고 실험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실물을 만드는데 종사하시는 분은 사판에 속한다. 이러한 관계의 이판과 사판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음으로 불이 아닌 불이(不二)이고, 이들이 원융하게 운영될 때 유용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니 귀한 것이 되는 것이다.
법을 입법하는 국회의원이 이판이라면, 이를 집행하는 행정부는 사판에 해당된다고 본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불이(不二)관계에 있음으로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어야만 이(理)와 사(事)가 원융하게 운영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할 때 정쟁이 심해지고 국가운영이 어려워져 국민에게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러할 때 이사가 원융하지 못하니 귀하지 않다.
종교단체에서도 종교의 이념의 범위에서 운영계획을 짜는 일은 이판에 해당되고 그 계획을 집행해 나가는 것은 사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역시 이판과 사판은 다르면서도 분이(分異)할 수 없는 불이관계에 있고, 계획과 실천이 원융하게 진행될 때 포교가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으므로 귀한 것이나 양분될 때 포교활동을 원만히 할 수 없게 됨으로 귀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는 이판이고 사용자는 사판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즈음 같이 모든 일들이 세분화되어 있는 삶에서는 세분화된 이(理)와 사(事)가 서로 원융하게 진행되는 것이 정말 진귀한 일이다. 때문에 나는 법안스님의 법어를 사원경영의 귀감으로 삼고 실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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