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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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월입니다

정찬열 군서면 장사리 출신 미국 영암홍보대사
온 산천이 꽃 천지입니다. 갖가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이 계절. '꽃보다 가벼운 이슬로 사라진 이들에게' 보냈던 모 방송국 앵커의 '앵커브리핑'이 아프게도 되살아납니다.
1974년 4월에 공포된 긴급조치 제4호. 다음해 4월 그 법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던 인혁당 사건 피의자 여덟 명에 관한 이야기. 선고 후 만 하루도 되지 않아 사형을 집행 한 다음, 고문 흔적이 드러날까 봐 유가족에게 시신도 돌려주지 않고 화장해버린 사건. 그래서 국제법학자 회의에서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됐던 그 날의 일을 앵커는 우리에게 생생히 되살려 주었습니다.
2007년 1월 그들은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 받습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올 수 없습니다. 40년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며 기록되어 기억됩니다. 역사란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4월이 다시 왔습니다.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가 산천에 만발한 이 계절. 가슴 아팠던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꽃 같은 생명이 온 국민이 생생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숨져간 그날이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그 해 11월, 진도 팽목항을 찾아 갔습니다. 노랑색 리본이 바람에 펄럭이고, 리본에 담긴 가슴 절절한 사연들을 보고 또 보며 사람들이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바닷가 저만치 밀려오는 파도에 말없이 손을 담그고 있는 한 실종 학생의 어머니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뜬금없이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바느질 하고 있던 어머니가 멀리서 들려오는 동생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를 듣고 보선발로 뛰어나가 보듬고 들어오던 모습. 녀석은 넘어져 무릎에 피가 삐죽거렸습니다. 사건 초기, 어머니의 심정으로 맨발로 뛰어나가 모두 구조에 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피워 올랐습니다.
그 해 10월, 엘에이를 찾았던 어느 시인은 "우리의 역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국민들의 가슴에 크나큰 상처를 남긴,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못한 '사건' 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일부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다른 견해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입니다. 남의 슬픔에도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우리 모두 자식 가진 부모이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역사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4월에, 버려진 섬에도 꽃이 피듯 피폐한 사람들의 가슴에 봄꽃이 환히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다시, 앵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의 마지막 멘트가 가슴을 울립니다. "74년 4월 3일 긴급조치라는 이름으로 숨져간 젊은 영혼을 기억합니다. 이 땅의 법치주의는 그렇게 한발 한 발 더딘 걸음을 걸어왔습니다. 비가 그치고 밤이 지나면 다시 벚꽃은 필텐데, 그들이 바라보았을 벚꽃은 그날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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