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나헤라에서 산토도밍고 델 라칼자다까지 21㎞<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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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12>나헤라에서 산토도밍고 델 라칼자다까지 21㎞<계속>

아픈 다리 달래며 묵묵히 목적지 향해…"누구든 산티아고에 닿으면 그가 勝者"

가로수에 지역대항 축구대회 벽보가 붙어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이곳 사람들의 열기를 알 것 같다. 공원에는 일요일이라 시민들이 나와서 노닐고 있다. 프라다나스 나무가 줄을 지어 서있다. 저렇게 나무와 나무가 가지를 이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은 이 지역 도시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쪽 나무와 저쪽 나무의 가지 끝을 묶어두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져 한 나무처럼 되는 모양이다. 신기한 풍경이다.
산토도밍고 게 하 칼사다 광장으로 갔다. 잔치는 끝나고 몇 사람이 골인 지점에 설치된 고무풍선으로 만든 개선문을 철거하고 있다. 취재를 마친 TV방송국 중개차가 행사장을 빠져 나간다. 휴지조각 몇 개가 바람에 나뒹굴고 있다. 선수를 환영하던 관중들의 환호성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 많던 사람은 다 어디로 갔을까.
광장을 나와 숙소를 향해 한참을 걸었다. 그 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아니, 자전거 선수가 아닌가! 마지막 선수가 자전거를 몰고 들어오고 있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오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보낸다. 나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선수는 있는 힘을 다해 휘청휘청 자전거를 몰아간다. 행사 진행차가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그 뒤를 따라간다. 행사진행 트럭에 선수 두 명이 앉아 있다. 자전거에 문제가 생겼거나 몸이 아파 자동차를 타고 오는 모양이다. 차에 있는 선수들이 앞서 가는 선수를 바라본다. 동료 선수를 바라보는 눈에 안쓰러움과 부러움이 함께 들어있다.
몇 킬로를 달려왔을까. 기진맥진 비틀거리며 골인지점을 향해 자전거를 몰고 가는 선수의 뒷모습이 골목을 돌아 사라졌다. 선수를 맞이하는 환호성은커녕 개선문마저 철거해버린, 텅 빈 광장을 향해 그는 달려갔다.
일등 선수가 골인한 지 두세 시간이 지난 지금,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이제야 도착했을까. 땀 범벅이 되어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가던 꼴찌 선수의 얼굴이, 포기하지 않고 끝내 결승점을 향해 당당히 돌진해 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숙소에 돌아와 순례자들에게 꼴찌 선수 얘기를 했다. 무릎이 고장 나 이틀째 알베르게에서 쉬고 있다는 영국인 순례자가 말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누가 먼저 가는가를 겨루는 곳이 아니지요, 각자의 힘에 맞게 걸어서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누구나 승자가 되는 길이지요.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요. 내 길을 내가 걸어가는 겁니다. 그 선수처럼 포기하지 않고 결승점에 도착하면 결국 이기는 자가 되는 거지요.”
산토도밍고를 생각하면 꼴찌 선수가 떠오른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갈채를 보내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산토도밍고 대성당에 들렀다. 정문의 아치가 “중세 기독교가 만들어 낸 가장 훌륭한 로마네스코 양식의 출입구”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 도시는 카미노 후원자였던 도밍고 데 칼자다가 다리를 놓고 성당과 병원을 지으면서 순례자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1109년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시신이 성당 지하에 모셔져있다. 도시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따라 산토도밍고라고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당 앞 작은 건물로 발길을 옮긴다. 이 성당에 암탉 한 마리가 금으로 된 새장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안내서에서 읽었기에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암탉 두 마리가 쇠창살 사이로 보인다. 모형 닭이다. 모형 닭 사이에 조개껍질이 하나 놓여있다. 야고보 성인을 떠올리게 하는 조개껍질이다. 살아있는 닭이 안쪽에 있는가 싶어 고개를 기웃거려 안을 눈여겨보았다. 닭이 몇 마리 보인다. 성당에서 닭을 기르고 있다. 전설이지만 사람들이 이를 전승하면서 도시의 일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성당 문이 열리고 미사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사람들 틈에 섞여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산토도밍고 동상이 마련되어 유치창 안에 보존되어있다. 그리고 도밍고 성인의 발 양옆으로 닭이 한 마리씩 서있다.
집에 아이들이 궁금해 전화를 하고 싶어 사람들에게 물으니 사이버 카페에 가면 국제전화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물어물어 찾아갔다. 이 길을 걸으면서까지 셀폰을 가져와야하는가 싶어 전화를 가져오기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딸하고 통화를 했는데 요금이 2유로 정도 나왔다.
알베르게 쪽으로 나오는데 무슨 행사를 위한 것인지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깡충깡충 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귀엽다. 언제나 어디서나 저렇게 아이들은 어른들의 기쁨이고 희망이다. 유모차에 실려 나온 아이와 어머니를 만났다. 아이가 방긋이 웃는다.
그런데 성당 부근에 사람들이 많이 서성이고 있고 경찰차도 한 대 부근에 서 있다. 경찰에게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이냐고 물어보아도 그냥 고개만 흔든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학생들 예일곱이 시멘트 구조물 위에 쪼르르 앉아 발을 흔들고 있다. 몇 살 먹었느냐고 어느 학교냐고 영어로 물어보니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한다. 스페인은 중학에서 영어를 가르치지 않은지 모르겠다.
아이들과 어울려 사진도 찍고 하는데 장의차 한 대가 성당 쪽으로 움직여간다. 따라가 보았더니 성당 정문 앞에 관을 얹어놓을 장치가 놓여있다. 관이 내리자 곧이어 신부님이 나와서 축성을 하고 짧은 경을 읽었다. 그리고 나자 장정들이 관을 둘러메고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그제서야 밖에서 서성거리던 사람들이 모두 성당 안으로 따라 들어간다. 장례식이 예정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태어나서 이 세상에 머물다가 마지막을 배웅하는 모습도 어디서나 저렇게 비슷비슷 하다.
마켓에서 와인 한 병과 식료품을 사왔다. 일요일이라도 순례자를 위한 작은 마켓은 늘 열린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바나나를 올리브기름에 튀기면 고구마 맛이 난다고 한다. 올리브 나무가 유난히 많이 보이는 이곳이기에 올리브유 쓰임새가 많은가 보다.
이곳 알베르게도 순례자에게 돈을 직접 받지 않는다. 도네이션 통에 ‘알아서’ 넣고 가라고 한다. 산토도밍고 성인을 생각하면서 산토도밍고의 밤이 깊어간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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