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公平)과 공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
검색 입력폼
 
오피니언

공평(公平)과 공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

조정현 영암읍도시재생주민협의체 위원장 영암월출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공평(公平)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름'이라는 의미이다. 언뜻 보면 합리적이고 문제가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공평이라는 것을 아무 조건 없이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입한다면 크나큰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이념이 '공평'과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폐해는 '빈부의 차'이다. 어느 사회나, 어떤 조직이나 문제가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순수 자본주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누구나 균등하다고 보면서, 누구에게나 같은 조건에서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언뜻 보면 반드시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체제이지만 다른 조건에서 한 가지만 살펴봐도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격투기 경기에서 체급의 차이 없이 경기를 진행하라고 하면 체중이 적게 나가는 선수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시합을 하지 않겠다고 할 것이며, 이를 보는 관중들도 그런 경기는 할 수 없다는 것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부의 차이를, 지닌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는가? 부를 가진 사람은 더 많은 부를 손쉽게 쌓을 수 있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작은 재산조차도 쌓을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공평한 사회'는 전혀 공평하지 않은 것이다.
공평과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를 지닌 공정(公正)은 '공평하고 올바름'이란 의미이다. 거대 공룡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자본주의에 소수 또는 약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공정이란 단어가 붙은 새로운 어휘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공정거래, 공정거래법, 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조정원, 공정무역, 공정여행 등등. 자본주의를 거부하지는 않으면서 자본주의의 불합리성을 수정하기 위한 방편으로 수정 자본주의란 개념이 생기게 되었고, 이 개념의 밑바탕에는 바로 '공정'이란 개념이 있다. 공정은 '모두에게 올바름'으로 이해될 수 있는 '정의(正義)'와도 어울린다. 하바드 대학의 유명한 교수 마이크 샌덜은 그의 명저『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란 해야 할(또는 할 수 있는) 올바른 일"이라 개념화하였다. 공정 또는 정의란 바로 치우치지 않는 '고름'이 아니라 체급을 나누고 약자에게 이점을 주는 '올바름'이다.
플라톤이 기록한『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정의)에 대해 "올바름은 강자의 이익이 아니라 약자의 이익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공정이란 개념과 같은 것이다. 앞에서 살폈듯이 공정은 소수 또는 약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거대재벌 또는 공룡집단은 늘 '공평'을 외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자유'를 주장한다. 자신들의 얼굴을 포장하기 위해 공정한 무역, 공정한 거래를 외치는 경우는 있지만, 그들의 본성은 '공평'과 '자유'를 담고 있다. 서양의 소크라테스 시절에도, 동양의 공맹자 시절에도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해 '공평한 거래, 공평한 법률, 공평한 사회, 공평한 국가'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공평이 얼마나 불공평했는지는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만들어져서 인류의 역사와 거의 함께 해온 기나긴 자본주의란 오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공평과 공정에 대해 길게 살펴보았다. 이렇게 길게 살핀 데에는 민선 8기 우승희 군수의 성공적인 치정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동안 목안에 든 가시처럼 성가신 존재였던 '선거법'에 대한 1심 재판은 우승희 군수 개인에게도, 그리고 우왕좌왕하고 있던 영암군민에게도 좋은 결과를 안겼다. 이제 우리 고장 영암을 위해 좌고우면 하지 않고 앞만 보고 가면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논리를 내세워 공평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평등이란 말을 내세우고 자유시장이란 말을 내세워 그럴듯한 궤변을 늘어놓을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과거의 권력으로부터 혜택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짜고 치던 시절에 배제됐던 사람들에게 더 많은 햇볕이 들게 하는 것이 공정이다.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햇볕이 들면 햇볕을 받지 못하는 대다수의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서서히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게 된다.
델피(Delphi)의 아폴로 신전 입구의 두 기둥 중 하나에 새겨진 그리스어 'γν?θι σεαυτ?ν(Gnothi Seauton)'은 '너 자신을 알라'이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또 다른 기둥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문구 'μηδ?ν ?γαν(Meden Agan)'이 새겨져 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도를 넘지 마라'이다. 논어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나 중용지도(中庸之道)에 해당하는 말이다. 멀리 보지 않고 주변만 둘러보아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과거의 누렸던 것들을 조금이라도 배제하려하면 헐뜯고 비방할 것이다. 그러나 목소리가 큰 그들을 위해 다시 공평을 정책의 원칙으로 삼게 된다면, '혁신'을 내세우는 민선8기의 핵심 아젠다는 사라지고 다시 또 과거로의 회귀이다. '혁신으로 도약하는 더 큰 영암'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도를 넘는 세력들 보다는 약자에게 눈길을 한 번 더 줘서 그들에게 이익을 더 주는 '공정'이 최우선 화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오늘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