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편성 및 운영 부적정
의회 의원들에 일정액씩 포괄적 할당
예산편성의 공정성 투명성에 불신초래
연말이 되면 군 예산부서는 눈 코 뜰 새가 없다. 수치계산 작업만도 몇날며칠 철야해야 한다. 곁에서 잠시 지켜만 보아도 군청 내 최고 격무부서임이 실감 날 정도다. 이런 예산부서의 업무진행에 차질을 빚게 하는 '단골'이 바로 의원들이다. 이른바 의원사업비 내역을 빨리 내줘야 하는데 자기 지역구 이사람 저사람 챙기다보니 늦어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예산은 '요구주의'다. 즉 사업부서가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사업비를 정해야 한다. 규모에 따라 적절한 심의가 뒤따른다. 그런 다음 예산부서에 사업비 반영을 요구한다. 반면에 의회는 사업부서가 아니다. 예산요구도 할 수 없을뿐더러 편성권도 없다. 고유권한은 예산심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회는 수년 동안 관행처럼 의원 각자가 '쌈짓돈'처럼 사용할 한해 수억여원의 예산을 버젓이 예산부서에 요구했고, 집행해왔다.
의원사업비는 이처럼 책정되고 집행된다.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 위반이다. 제8조(사업예산의 운영관리) 2항에 '지방자치단체는「지방재정법」제3조에 따라 재정을 건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하여야 하며, 사업별 목적·용도 및 추진계획 등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아니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지방의회 의원에게 일정액씩 예산을 포괄적으로 할당하여 편성·집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도 2011년12월 재정건전성 감사를 통해 지방자치단체가 법령에 근거 없이 사전에 수요조사 및 사업계획 수립절차를 거치지 않고 지방의회 의원 1인당 일정액씩 세출예산에 편성한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은 의회 요구에 따라 감사기간(2012∼2014년) 매년 농업경쟁력강화사업 명목으로 의원 1인당 1억원에서 2억원 수준의 예산을 임의대로 편성하고, 읍면별로 의원별 배정액을 사업부서인 친환경농업과에 구두로 통보해 사업을 시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업부서가 아닌 의회가 요구한 사업이다 보니 사업부서인 친환경농업과는 4년 동안 무려 42억500만원에 달하는 예산을 읍면별 배정기준조차도 마련하지 않고 기획감사실에서 구두로 통보해준 읍면별 의원별 사업비를 그대로 읍면에 구두로 배정해 사업을 추진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전남도는 특히 사업비가 이처럼 집행되면서 농업경쟁력강화사업비가 의원들의 포괄사업비로 주민들에게 잘못 인식되고, 결과적으로 군의 예산편성과 사업추진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더욱 심각한 일은 2015년도 예산에도 똑같은 의원사업비인 농업경쟁력강화사업이 들어있고, 추가로 주민불편사업 역시 의원사업비 명목이라는 점이다(주민불편사업비 집행 실태에 대해서도 심층취재해 보도할 예정이다).
■사업대상자 선정 부적정
과수·채소 시설물인데도 벼 면적기준
지원대상의 83%가 도비 보조기준 미달
과수·원예 저온저장고가 술창고 전락
사전에 구체적인 사업계획 없이 예산이 책정되다보니 집행도 주먹구구식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사업대상자 선정에서 드러난다.
전남도 감사결과 군은 4년 동안 시장 출하 목적의 신선과채류의 신선도 유지와 수급조절을 통해 농업인 소득을 높이기 위해 과수와 채소 등을 재배하는 212농가에 '농산물 소형 저온저장고' 설치비로 5억8천100만원을 지원했다.
전남도도 2000년부터 도비보조사업으로 농산물 소형 저온저장고 설치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곳당 10㎡, 사업비는 600만원으로 영암군과 동일하다. 군은 특히 도비보조를 받아 추진하는 농산물 소형 저온저장고 설치사업을 위해 자체 평가기준도 만들어놓고 있다. ▲소규모 재배농가 배려 차원에서 과수와 채소 등 2만㎡ 미만 농가를 대상으로 지원하되, ▲저장고의 이용률 제고를 위해 2∼3농가가 공동으로 이용을 희망하는 경우 우선 지원하며, ▲과채류의 경우 평가는 1만5천∼2만㎡ 미만은 15점, 1만∼1만5천㎡ 미만은 30점, 2만㎡ 이상 또는 재배면적이 없는 경우 0점을 주도록 하는 식이다.
하지만 군은 자체사업으로 추진하는 농산물 소형 저온저장고 설치사업에 대해서는 도비 보조사업과 규모, 규격, 사업비 등이 모두 동일함에도 마련해놓은 평가기준을 깡그리 무시하고 엉뚱한 기준을 적용했다. 즉 과수와 채소를 위한 시설물인데도 난데없는 친환경 인증 여부(150점), 벼 등 전체작물 재배규모(6ha이상 100점, 5∼6ha 80점, 3∼5ha60점, 1∼3ha 40점, 1ha 미만 0점), 각종 보조금 지원여부(200점), 사업타당성(50점) 등을 기준으로 적용했다. 사업대상자 선정까지도 의원들 입맛대로인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 결과 총 212농가 가운데 과수나 채소를 재배하지 않는 농가가 사업대상자로 선정된 경우가 21농가나 됐고, 과수와 채소 재배 규모가 2만㎡ 이상으로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경우가 13농가나 됐다. 지원대상의 83%인 177농가가 도비보조 사업기준에 미달했다.
특히 전남도 감사반이 감사기간 농산물 소형저장고 162곳의 활용실태를 표본조사 한 결과 과수나 원예작물의 수확기로 저장고 활용률이 가장 높아야 할 시기임에도 무려 73%인 118개소가 과수나 원예작물 대신 쌀과 젓갈, 된장 등이 보관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술, 고기까지 보관되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업대상자 선정심의회 미실시
선정심의회 결과 무시 '끼워 넣기'도 예사
군은 '농업경쟁력강화사업지침'에 사업대상자는 반드시 읍면 선정심의회를 통해 선정하도록 해놓고도 이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의원들의 요구로 '끼워 넣기'가 이뤄진 것이다.
2012년의 경우 덕진면 9개 농가 3천500만원, 군서면 9개 농가 1천100만원, 서호면 9개 농가 1천만원 등이 선정심의회 없이 사업대상자가 선정됐다. 2013년에는 영암읍 15개 농가 3천500만원, 도포면 14농가 3천800만원 등이 역시 선정심의회 없이 사업대상자가 선정됐다.
■사후관리도 소홀
군과 각 읍면 실태점검 단 한 차례도 없어
군이 마련한 '농업경쟁력강화사업지침'에는 각 읍면에서 인력절감형 농기계, 축산퇴비사, 농산물 소형 저온저장고, 시설하우스 등 시설물 및 장비 등에 대해서는 1년에 1회 이상 임의처분 여부와 보조지원 목적대로 사용여부를 점검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군 친환경농업과는 각 읍면에서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사후관리 실태에 대한 점검을 단 한 차례도 실시하지 않고 있는데도 지도감독은 물론 군 차원의 자체점검에도 나서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전 계획 없이 의원 요구로 추진된 사업이니만큼 사업부서로서는 적극적으로 관리할 겨를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과수와 원예작물을 위한 농산물 소형 저온저장고가 술과 고기 보관창고로 전락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인력절감형농기계나 축산퇴비사, 시설하우스 등은 과연 지원목적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아니면 임의처분 되었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있다. 군민들의 소중한 혈세가 아무런 대책 없이 새고 있는 것이다. / 이춘성 기자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