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1797년(정조 21)에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는 현 소재지로 이건하였으나 1868년에 훼철되었다. 그후 다시 복설되었으나 6.25사변으로 인하여 소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71년에 중건한 것이다.
제향된 한벽당 곽기수는 사암 박순(1523∼1589)의 문인으로 여러 청관직(淸官職)을 거쳐 호조좌랑을 역임하고 부안현감이 되었다. 또한 왜적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효도가 지극하였다.
한편 현주 곽성구는 한벽당의 손(孫)으로 여산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또 남계 곽제화는 대사간(大司諫)을 지냈으며 사국(史局)을 관장하고 선정을 베푸니 이름이 당세에 높았다.
충효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내부에는 남계 곽제화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사우의 동쪽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중의 재실(齋室)이 갖춰져있다.
기타 관련된 자료는 6.25때 모두 소실되어 현존하지 않고 있으며 남계 곽제화의 정청비(政淸碑)가 강진군 성전면 대월리에 있다.
현재 후손 곽길수씨가 관리하고 있다.
/변중섭 기자
변중섭 기자 jusb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