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중용의 리더쉽이 절실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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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중용의 리더쉽이 절실한 때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사회의 리더십은 희망과 화합을 중요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채워 주는 것은 곧 배려와 섬김의 '중용 리더십'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중용이란 무엇일까?
중용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결코 바뀔 수 없는 이치와 상태나 정도를 말한다. 뜻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이루기 힘든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중용의 실천을 위해 예로부터 선조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대표적 인물은 1360년 충청도 온양에서 태어난 고불 맹사성(孟思誠)이다.
맹사성이 보여주는 중용 리더십의 특색은 청렴과 겸손을 바탕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유능한 인재들도 적절한 처세를 하지 못해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에 반해, 맹사성이 보여준 원만한 처세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중도를 지키며 올바른 길을 제시한다.
특정 세력과 관계를 맺기보다 다양한 세력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친화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그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처럼 나서 그를 지켜주었다. 이로 인해 그는 훌륭한 정치인으로 장수할 수 있었고, 세종 때에는 우의정과 좌의정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맹사성이 천수를 누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배려와 감사, 관용,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용이 바탕을 이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그가 유명했던 것은 역마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 다닌 점이다. 소를 타고 다니기도 하고 공적인 업무 이외에는 역마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모습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세력의 선비들도 맹사성을 존경하게 된다. 어느 세력을 불문하고 여러 세력들을 타협하고 통합시키는 능력, 겸손과 중용적 지도력이 맹사성의 매력이었다.
중용(中庸)에 '서기중용(庶幾中庸)이면 노겸근칙(勞謙謹勅)'이라 했다. 즉 중용에 가까워지려면, 부지런히 일하고 겸손하고 삼가고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중용을 이루는 길은 매우 험난하다. 그만큼 중용에 다다르기 힘들기 때문에 맹사성이 더욱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한 중용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중용의 미를 보여주는 지도자를 더욱 흠모하게 된다. 항상 부지런히 노력하고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애써도 더 이상 올바를 수 없는 최고의 경지인 중용에 다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는 중용에 조금 가까워졌을 뿐이다.
이렇듯 다다르기 힘든 중용의 도(道)는 자사(子思)의 철학이 담겨진 것이다. 논어, 맹자, 대학과 더불어 사서(四書) 중 하나인 중용은 자사가 쓴 것이다. 유가 학파의 정통 학맥은 공자로부터 증자(曾子), 자사, 맹자(孟子)로 계승되는데, 중용을 쓴 자사는 공자의 손자이다. 자사가 유가의 정통 학맥을 계승했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중용 때문인데, 109자 밖에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유가의 근본 철학이 응축되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근본 철학은 자사가 말하는 중용의 도(道)이다.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는 정신적 철학이다. 대한민국의 올바른 지도자라면, 또한 우리사회의 지도자라면 중용의 철학을 올바로 이해하고 정신적 철학의 수준을 뛰어넘어 현실적 실천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배려와 섬김의 유교적 정신을 이어가되 글로벌 시대에 외국인들과도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 세계에는 다양한 민족과 수많은 지도자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지도자도 세계 속에서 한국인만의 중용 리더십으로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고, 편견 없이 함께 나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때로는 관용과 화합을 보이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고, 약간의 정도를 넘어선 지나침이 문제와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문제가 있을 때에는 자세를 낮추고 섬김과 중용의 미로 한 발 짝 더 도약해야 할 것이다. 지도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한국인의 중용 리더십으로 진리와 정의를 위해 우뚝 서야하며 작은 희망이라도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만이 우리 사회가 바로 설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한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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