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포면기관사회단체협의회가 주최하고 제주양씨 주부공파종중이 후원한 이날 행사에는 임채을 도포면장과 재경도포면향우회 김선형 회장,제2대 회장을 역임한 양백근 회장,재광도포면향우회 강규백 회장, 김한남 문화원장, 김소은 영암군노인회장 등을 비롯한 향우와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재경도포면향우회 김호중 전 회장의 강연배경설명 및 강사소개로 시작된 이날 강연은 도포면 목우동 출신으로 법무부에서 30여년간 근무한 뒤 퇴직한 영암역사연구회 조복전 회장이 '왜구의 격퇴로 국란을 평정한 양달사 장군의 기개'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제주양씨 문정공파종중 관계자는 "이번 강연에 많은 향우와 지역민들이 참석해 지역의 역사인물에 대한 존경심과 호국정신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됐다"면서, "지역에 큰 인물이 존재했던 만큼 학술발표회 등을 통해 검증하고 홍보해 전국에서 추앙받을 수 있는 인물로 알려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조선 중종13년(1518년) 도포면 봉호정에서 출생한 양달사 장군은 자는 도원(道源), 호는 남암(南巖)이며, 본관은 제주다. 어려서 담력이 있고 용감한 기질이 있었으나 학문에 뜻을 둬 큰형 달수(達洙)와 아우 달해(達海), 달초(達礎)와 더불어 삼종숙(三從叔) 학포(學圃)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했다. 중종31년(1536년) 무과에 급제한 양달사는 해남현감으로 재직하다 모친상을 당해 관직을 사임하고 도포면 봉호정에서 시묘를 하고 있던 중 1555년 왜구가 영암읍까지 북상해 향교에 주둔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상복을 입은채 동생 달수 등과 영암의 빈성에 들어가 군대를 모집, 적의 허를 찌르는 전술로 100여명의 왜적을 살해함으로써 왜구들을 격퇴, 국가적인 왜란을 평정했다. 전투 중 왜구의 창에 찔린 양 장군은 상처의 독이 병이 돼 1년 뒤인 나이41세에 별세했다.
영암읍 동무리 5거리에는 양달사 장군의 일화가 담긴 '장독골샘'이 있다. 양달사 장군은 영암 전투 중 주야 3일간의 격전 끝에 적에게 포위됐다. 설상가상 군량미가 떨어지고 식수까지 고갈돼 병사들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됐다. 군사들의 동태를 살피던 양달사 장군은 장독(군령기(軍令旗):군인들의 기중 장군 표지기)을 높이 들어 한 번 호령한 후 내려찍자 신기하게 '쾅'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물이 솟아올랐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군사들은 함성을 올리며 솟아오른 물로 갈증을 달래고 사기가 충천해 왜구를 섬멸했다는 일화다. 영암읍 동무리 5거리의 '장독골샘'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영암읍내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사용됐었다.
이승범 기자 stonetig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