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리 쌍무덤에서 마한시대 금동관(편)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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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동리 쌍무덤에서 마한시대 금동관(편) 출토

일제 강점기 나주 신촌리 금동관 이후 100여년 만에 첫 출토

5세기 말~6세기 초 영산강유역의 고대 마한세력 존재 재확인

내동리 쌍무덤 출토 금동관(편)
지방기념물 제83호인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쌍무덤에서 마한시대 금동관(편)이 출토,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관련기사 5면>
군은 영산강유역의 고대사회 실체를 밝히기 위해 전남문화관광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내동리 쌍무덤에서 국보 제295호로 지정된 나주 신촌리 금동관과 매우 흡사한 금동관(편)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이번 금동관(편) 출토는 일제강점기에 나주 신촌리에서 금동관이 출토된 이후 마한시대 금동관으로는 100여년 만에 처음 출토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고 군은 설명했다.
이 금동관(편)은 지난 2019년 7월 금동관에 장식된 유리구슬, 영락(瓔珞)과 금동관 조각들이 확인됨에 따라 영산강유역의 마한 최고 수장층의 것으로 확인, 관련 학계 및 세간에 큰 이슈가 되었던 내동리 쌍무덤에 대해 추가적인 발굴조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출토됐다.
금동관(편)
금동관(편)
출토된 금동관(편)은 금동대관 둥근 테의 앞쪽과 양측면에 나뭇가지 모양의 세움 장식을 세운 형태로, 줄기 위에 커다란 꽃봉오리를 만들고 그 좌·우 가지에 2개의 꽃봉오리를 비스듬하게 배치했다.
그 아래에는 2단의 가지를 좌우대칭으로 뻗게했는데, 아래에서 두 번째의 가지는 매우 작게 표현됐다. 꽃봉오리 중앙에는 연꽃무늬로 표현했고 최상단에는 유리 구슬을 장식했다.내동리 쌍무덤 출토 금동관(편)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나주 신촌리 금동관과 그 형태가 매우 비슷한 점에서 영산강 유역의 마한세력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최고의 위세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군은 밝혔다. 이에 따라 영암 내동리 쌍무덤에 안치된 피장자의 지위나 권위는 당시 전남지역 고대 마한사회의 최고의 귄력자로 추정된다는 설명이다.
나주 신촌리 출토 금동관
나주 신촌리 출토 금동관
한편 전남지역 452개소에 달하는 마한고분군 중 영암군에 분포된 고분군은 약 41개소가 밀집되어 있고, 그 중 20여기의 고분군이 내동리 쌍무덤 주변에 분포하고 있어 이 지역에 마한시대 강력한 정치세력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학계는 내동리 쌍무덤이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조성된 고분으로 보고 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금동관 이외에 일본고분에서 출토되는 다량의 동물모양 토기 등이 무덤 주변 도랑(주구)에서 출토되고 있어 발굴조사가 완료되면 국내·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 것으로 본다.
내동리 쌍무덤 매장주체부 전경
전동평 군수는 "이번 발굴성과를 바탕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해 고분의 성격을 규명하고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해 보존할 예정"이라면서, "또한 고분군의 보존정비와 장기적인 종합정비계획도 세워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승범 기자 stonetig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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