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찬열의 산티아고 순례길 2천리
검색 입력폼
 
기획특집

시인 정찬열의 산티아고 순례길 2천리

험한 오솔길 지나 언덕오르니 온통 금작화…

"어머니는 새벽하늘 흠뻑 적시고도 해 뜨면 흔적 없이 몸을 감추는 이슬 같은 존재" 

왼쪽부터 알렉스, 정지은, 김나연, 원가희, 원대한, 대한이 친구, 필자
빗물에 씻겨간 길에 자갈이 드러나 있다. 숲은 햇빛이 제대로 들지 못할 만큼 울창하다. 길은 두 사람이 겨우 비켜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앞서 가는 여자의 차림이 좀 독특하다. 50대로 보이는데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제법 큰 가방을 앞뒤로 둘러맸다. 이름은 마리아. 홀랜드에서 왔다고 한다. 불교에 심취해 인도와 일본에서 꽤 오랫동안 살았다고 했다. 성악을 전공했다기에 노래를 잘 하느냐고 했더니 빙긋이 웃는다. 순례길에서 성악가의 노래를 한 번 들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아니겠냐고 했더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래를 시작한다. “마리아 마리아….” 청아한 목소리가 뜬금없이 산천에 울려 퍼진다. 자기나라 민요라고 했다. 앞서가던 순례자 몇이 뒤를 돌아본다.
소나무 그늘 아래 아내가 한국인 아주머니와 함께 앉아있다. 아까 만났던 김선생의 부인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서울 청담동에 산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있는 동안 김선생이 도착했다. 배낭이 많이 무거워 보인다.
오르막길을 걸으면 내리막길이 나오기 마련이다. Zubiri 3.4㎞ 표지판이 보인다. 숲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오래된 집터가 나온다. 순례자들을 위한 여관이었단다. Venta del Perto. 제법 규모를 갖춘 건물이었다는 것을 돌로 쌓은 넓은 집터가 말해주고 있다. 썩은 나무판자와 기둥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 철로 만든 욕조 하나가 나뒹굴고 있다. 벌겋게 녹이 슬었다. 세월은 저렇게 야금야금 모든 것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가고 있다. 나무도 바위도 쇳덩이도 모두 한 줌 가루가 되는 것이다. 저기 피어나는 꽃송이도 나르는 새도, 그리고 인간도.
엊저녁 빨아놓은 빨래가 마르지 않아 배낭에 줄래줄래 걸어 말리며 걸어가고 있다.
엊저녁 빨아놓은 빨래가 마르지 않아 배낭에 줄래줄래 걸어 말리며 걸어가고 있다.
"Welcome to Sport Hall…6-9". 식당 안내문이 나무에 걸려있다. 마을이 멀지않았나보다. 숲을 벗어나자 아담한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Zubiri다. 청담동 아주머니와 아내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농가 뜰에 핀 튤립의 빨강색과 이파리의 초록색깔이 눈길을 확 끈다. 꽃도 물도 나무도 공해가 없어 저렇게 제 모습을 뽐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다리를 건너 마을에 들어선다.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한 사람당 8유로다. 건물이 꽤 넓어 보여 몇 사람이나 수용할 수 있느냐 물었더니 150베드라고 했다. 방마다 크기가 달라 우리는 2층에 있는 12인용 방을 배정받았다. 옆방은 네 명을 수용한다고 했다. 오후 2시30분이다.
짐을 푼 다음 아내와 함께 시내를 돌아보았다. 일요일이라선지, 시골이라 그런지 마을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바 한 군데가 문을 열었는데 젊은이 몇이 한담을 나누고 있다. 인적 없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식당이 보인다.
음식을 주문해 먹고 있는데 청담동 김선생 내외가 들어온다. 다리는 괜찮냐고 물었더니 견딜만 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카미노 길은 원래 천천히 걷는 길이 아니더냐고 한 마디 덧붙인다. 젊은이들이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진다.
맥주 한 잔을 나누면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한국인 부부가 들어온다.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은퇴를 했는데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이 길에서 만난 두 번째 한국인 부부다. 이재홍씨라 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한참을 쉬었는데도 아직 해가 남아있다. 마당에서 한국 젊은이 몇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반가웠다. 맥주나 한 잔하자며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여정을 마치는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걸어갈 길동무이다.
원가희, 정지은, 김나연, 그리고 파리에서 와인 공부를 하고 있다는 중국인 알렉스다. 가희는 대학 졸업 후 신문사에 근무했는데 이 길을 걸으며 진로를 생각해 보겠다 했고, 지은이와 나연이는 학생인데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 게 좋을지 이 길 위에서 결정하고 싶다고 한다. 기호승씨는 건축회사에 근무하는데 이 길을 걷기위해 휴가를 받아 왔다고 했다. 이 길은 종교적 이유로 걷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젠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발견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길이 되고 있다.
숙소 마당에서 원대한과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 늦게 도착했는데 빈방이 없다며 강당에 메트리스를 깔아주었다고 한다. 찬바람 도는 넓은 강당 한쪽 바닥에 메트리스가 너댓 장 깔려있다. 우리 방에서 담요를 가져다주었다. 알베르게에 따라 침구를 주는 곳과 주지 않는 곳, 침대 시트를 주는 곳과 주지 않는 곳으로 구분되고, 그에 따라 값도 오르락내리락 한다.
내 방에 들어가 보니 침대 한 칸이 아직 비어있다. 관리 착오인지 확인하려고 사무실에 가 보았는데 아무도 없다. 대한이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어머니라도 침대에서 주무시게 되어 다행이라고 아들이 좋아한다.
순례길 세 번째 밤이다. 어렴풋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가만히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대한이 어머님이다. 아들이 잘 자나 살피고 오신다고 했다. 시간이 꽤 지나 잠결에 얼핏 들으니 또 나가시는 모양이다. 두 번씩 일어나 아들 잠자리를 살펴보고 오시는 어머니. 다 큰 아들이지만 어미의 눈에는 보살펴 줘야할 아기일 뿐이다.
어머니. 소리 없이 내려 밤새 가만가만 대지에 스며들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는 이슬. 새벽하늘을 흠뻑 적시고도 해 뜨면 흔적 없이 몸을 감추는 한 방울 이슬 같은 존재. 그런 분이 어머니가 아닐까. 밤이 깊어간다.
#4월 29일(월)-쭈비리에서 팜플로나(Pamplona)까지 20㎞ 걷다

새벽이 나를 깨웠다. 배낭을 둘러멘다. 무겁다. 울타리 너머로 던져버리면 딱 좋겠다고 중얼거리다가 마음을 고쳐먹는다. 배가 풍랑에 뒤집어지지 않도록 밑짐을 싣듯이, 배낭은 길을 걷는 자에게 밑짐이 아닐까. 물살 빠른 강을 맨몸으로는 건널 수 없어도 짐을 지면 거뜬히 건너가지 않던가, 라고 생각하자 배낭이 훨씬 가볍다. 인간이 이렇게 간사스럽다.
아침 햇살이 산등성이를 비춘다. 순례자들이 띄엄띄엄 걷고 있다. 마르지 않은 옷가지나 양말을 줄레줄레 배낭에 걸어 말리면서 가는 사람도 보인다.
노란 꽃이 온 산을 덮었다. 금작화다. 봄이면 우리 산천에 진달래 피어나듯 이 땅은 금작화가 만발한다. 색깔만 다를 뿐 크기나 생김새가 진달래와 많이 닮았다. 심심산천에 진달래가 지천이듯 이골 저골 온통 금작화다.
우리 시인이 "영변 약산 진달래꽃 / 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오리다 / 가시는 걸을걸음 놓인 그꽃을 / 사쁜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고 진달래를 노래한 것처럼, 이곳 시인들은 금작화를 노래했다. 열여섯 살에 빛나는 시편을 써서 천재시인으로 불렸던 랭보는 '어린 시절'이란 시에서, "오솔길은 험하다 / 언덕은 금작화로 덮여 있다 / 바람도 없다 / 새들과 샘은 얼마나 멀리 있는가!…"라고 읊었다.
랭보를 생각하면, 열네 살에 동요 '고향의 봄' 노랫말을 지었다는 이원수 선생이 떠오른다. 선생은 랭보 보다 두 살이나 어린나이에 유명한 시를 쓴 셈이다.
'고향의 봄' 노래는 한때 국민애창곡 중 하나였다. 그런데 선생의 친일 전력이 알려지면서 그 빛을 많이 잃었다. 랭보는 열아홉에 시 쓰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전 세계를 유랑했다. 그는 프랑스 상징주의 대표 시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래서 이원수 선생은 시대 상황을 피해갈 수는 없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리고 역사가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동시에 역사는 무서워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자전거를 탄 젊은이 대여섯 명이 지나간다. 이 순례길이 끝나면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증서를 발행해 준다. 걸어 온 사람,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 그리고 말을 타고 온 사람. 세 종류의 사람들에게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는 확인 증서를 준다고 했다.
길가에 길게 지어진 돼지막사 같은 건물이 보여 가 보았더니 돼지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먼지만 쌓여있다. 공터엔 풀이 수북수북 한 길이도 높게 자라있다. 농가에 들어가 보았는데 헛간에 마른 풀 몇 덩이가 쌓여있고 농기구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마당에는 풀이 자라고 있다. 사람이 사는 집인가 의심스럽다. 스폐인의 경제가 어렵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농촌 풍경만으로도 이 나라의 경제사정을 짐작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울타리 너머로 말 목장이 보인다. 농부가 갓 태어난 새끼 말을 돌보고 있다. 말은 낳은 후 30분이면 걷는다. 인간은 1년이 걸린다. 갓 태어난 원숭이 새끼도 어미 원숭이의 털을 붙들고 혼자서 젖을 먹는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가. 혼자 일어서고, 스스로 완전하게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도대체 몇 년이라는 세월이 걸리는가.
목장 넘어 양떼들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손을 흔들어 주었더니 '흠메에 흠메에' 말을 걸어온다. 멀리서 오신 손님을 환영한다는 의미렸다. 다시 손을 흔들었더니 '흠메에에~~' 길게 대답해 준다. 저들은 저들의 언어로 얘기를 하고, 나는 나의 언어로 말을 한다.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제각기의 언어로 말을 걸어오듯, 말이 통하지 않으면 웃음이나 표정으로 생각을 표현하며 소통하듯, 인간과 양떼 사이도 이렇게 소리와 몸짓을 통해 교감하는 것이다.
동물뿐이겠는가. 저렇게 바람이 불때마다 이파리를 흔들어 환영해주는 나무들은 또 어떤가. 이 우주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각자의 생각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여 서로 소통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오늘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