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도 못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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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도 못한 놈'

정찬열 군서면 도장리 출신 미국 영암군 홍보대사
'개만도 못한 놈'이란 욕설이 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만약 개가 이 사실을 안다면 사람들에게 얼마나 서운해할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최근에 개가 전화를 걸어 위기에 처한 주인을 살려냈다는 뉴스를 듣고 나서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911에 전화를 한다. 그런데 워싱턴 주 리치랜드 벤토 카운티에서 환자인 주인이 집에서 실신하자 이를 지켜본 애견이 긴급전화를 걸어 주인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이 개는 코로 번호를 눌러 전화를 했고, 긴급 출동한 경찰에 현관문도 따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영리하고 충직한 개 이야기를 들으면 진돌이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 교육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진도에 살게 되어 진돗개를 기르게 되었다. 이름을 진돌이라 불렀다. 아침에 일어나면 진돌이가 쥐를 여러 마리 잡아 마당 앞에 늘어놓곤 했었다. 녀석은 그 추운 겨울밤에도 눈보라를 맞으며 꼼짝않고 토방 앞에 앉아 집을 지키며 밤을 새웠다. 새끼를 낳았을 때, 여섯 마리나 되는 강아지에게 젖을 빨리며 골고루 혀로 핥아주며 누워있던 모습, 그리고 행여 새끼를 해칠까 으르릉거려 주인도 가까이 다가가는 걸 조심해야 할만큼 제 핏줄을 아끼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실 한국이나 미국을 막론하고 개는 억울하게 평가절하 돼 있다. 한국에서는 아주 나쁜 사람을 '개만도 못한 놈'이라고 부르지만, 미국에서도 'Son of Bitch(개자식)'은 대표적인 욕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히려 인간이 개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이곳 미국에서 아이가 달린 젊은 부부가 이혼할 경우 자녀양육을 기피하는 현상이 새로운 가정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새 출발을 할 경우 자녀가 있으면 걸림돌이 될까 봐 자기가 낳은 아이의 양육을 회피하는 세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곳 한인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보도에 의하면 한국의 이혼율이 세계 1위에 올랐다니 거기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열아홉 살 난 우리 학교 K군이 위에 언급한 경우다. 담임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K군의 부모는 3년 전에 성격 차이라는 사유로 이혼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뉴욕으로 떠나고 어머니는 '경제적 어려움'이란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동안 친척 집에 얹혀살다가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다. 힘들긴 하지만 마음은 편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혼 당시 어느 한쪽도 자신의 양육권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듣고 "부모에 대한 증오를 넘어 인간적인 절망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다. 부모의 이혼사실보다 자식을 하찮게 여기는 사실에 더 충격을 느껴 한 동안 방황을 했었다. "어떻게 제 새끼를 서로 '안 맡겠다'고 할 수 있느냐"며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다고 말하곤 한단다.
부부가 오죽했으면 이혼을 했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아이들을 서로 떠 넘기려 하는 당사자들의 심정이 상당 부문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어린아이들을 두고 서로 양육을 미루는 부부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렇게 사람들은 이혼할 때 서로 자식을 맡지 않기 위해 싸우고, 때론 아이를 버리고 가출도 한다. 그것이 요즈음 일부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개들은 '본능적으로' 제 새끼들을 끔찍이도 챙긴다. 때론 목숨을 걸고 새끼를 지킨다. 그리고 자기를 키워준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한다.
만약 개들이 말을 할 줄 안다면, 그들 사이에서 질 나쁜 개를 가리켜 '사람만도 못한 놈' 또는 'Son of Human'이라고 저희끼리 수군거리지나 않을까.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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