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뿌엔떼 라 레이나서 에스텔라, 로스 아르꼬스까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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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8>뿌엔떼 라 레이나서 에스텔라, 로스 아르꼬스까지<계속>

"이레체 와인공장의 두 개 수도꼭지엔 순례자 병원서 빵과 와인을 나눠주던 전통 그대로"

꼭지를 틀면 와인이 쏟아지는,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수도꼭지다.
1170년 백작이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뒤 레오파스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베아론 가문은 그 아이가 죽은 백작의 후손일거라며 기뻐했다. 그러나 레오파스는 얼마 후 유산을 했다. 의혹의 시선들이 쏟아졌고 마침내 고의로 낙태를 했다는 혐으로 레오파스를 물에 빠트려 죽이라는 선고를 내렸다. 레오파스는 손발이 묵인 채 에가강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강물에 던져졌다. 3천명이 넘는 사람이 강 주변에 모였었다. 레오파스는 자신의 결백을 밝혀달라고 성녀 로카마르도에게 큰 소리로 기도했다. 그녀의 몸을 강에 던졌지만 강물에 빠지기는 커녕 둥둥 떠서 근처에 있는 모래밭으로 떠내려가 멈추었다. 군중들이 그녀를 어깨에 메고 으기양양하게 그녀가 살던 성으로 향했다.
저녁 준비를 하러 마켓을 보러갔는데 라면이 있다. 라면을 먹을 수 있다니! 반가운 김에 몇 봉지를 샀다. 식당에서 라면을 끊여먹는데 매콤한 맛이 환상이다. 객지에서 고향음식을 맛보는 기분이다. 라면 하나에 이렇게 감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라면을 처음 먹던 날이 떠오른다. 중학을 졸업한 후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시절, 보리타작 하던 날이었다. 마당 가득 보리를 말린 다음 품앗이를 하여 너댓사람이 도리깨로 보리 타작을 하는데 어머니가 먹을것을 내오셨다.
아침 일찍 영암장에 다녀오신 어머니께서 "아야, '라면'이란 것이 나왔더라 잉"하시며 새참거리로 끓여 내왔다. 그 꼬불꼬불하고 간간하고 매끈매끈한 국수를 닮은 음식, 라면을 그때 처음 먹었다.
1963년에 처음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라면이 나왔다니. 라면이 처음 소개된 지 50년이 되었다. 한국은 라면 소비에서 세계 7위지만 이것을 1인 라면 소비량으로 환산하면 세계 1위라고 한다. 그만큼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는 반증일 터이다. 라면, 오랜만에 참 맛있게 먹었다.
# 5월 2일 여섯 째날 에스텔라(Estella)에서 로스 아르꼬스(Los Arcos) 도착 21.3㎞
발님이 무사해야 이 길을 마칠 수 있을텐데...무릎이 아파 언덕을 옆으로 걸어 내려가고 있다. 청담동 아주머니와 함께 걸어가는 길 옆으로 금작화가 노랗게 피어 있다.
발님이 무사해야 이 길을 마칠 수 있을텐데...무릎이 아파 언덕을 옆으로 걸어 내려가고 있다. 청담동 아주머니와 함께 걸어가는 길 옆으로 금작화가 노랗게 피어 있다.
행여 옆 사람에 방해가 될까싶어 조심조심 일어나 배낭을 챙겨 나온다. 로비에 나와 보니 벌써 출발하는 사람도 있다. 6시15분, 어둑어둑한 새벽 비가 내린다. 비옷을 챙겨 입고 우장을 둘러쓰고 출발한다. 어둠 속에서 조가비 사인을 찾아가며 길을 걸어간다.
3㎞쯤 걸어가니 이레체Irache 수도원이 보인다. 베네딕트 수도회에서 건립한 수도원이다. 수도원 도착하기 전에 이레체 와인공장에서 운영하는 두 개의 수도꼭지가 있다. 오른쪽을 틀면 물이 나오고, 왼쪽은 와인이 나온다. 옛날 이곳 순례자 병원에서 빵과 와인을 나누어주던 전통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1891년부터 이 서비스를 해오고 있단다.
"18세 미만은 와인을 마시지 말라"는 문구가 붉은 안내판에 적혀있다. 나는 18세가 넘었으니 괜찮겠다고 농담을 하며 왼쪽 꼭지를 틀었다. 레드 와인이 쏟아진다. 꼭지를 틀면 불그레한 와인이 나오는,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수도꼭지다. 빈 병에 반쯤 채워 홀짝거리며 걸어간다. 새벽부터 와인을 마셨더니 좀 알딸딸하다.
비가 그쳤다. 길은 호젓한 숲속으로 이어진다. 멀리 산등성이에 흰구름이 띠를 둘렀다. 저만치 앞서 자매님과 함께 언덕을 내려가는 아내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옆으로 걷고 있다. 무릎이 여전히 시원치 않는가 보다. 노란색 금작화가 길가에 피어있다.
키가 작달막한 여인이 나를 앞질러 걸어간다. 작은 키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큰 배낭을 짊어졌다. 또글또글 굴러가듯 잘도 걸어간다. 한참을 걸어가더니 언덕받이에 배낭을 내려놓고 멈추어선다,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미국 플로리다에서 왔다고 한다. 큰 배낭이 무겁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씩 웃는다. 이름이 마이클링, 올해 예순 일곱 살이라고 한다. 돌아가신 남편의 생일이 오는 6월인데 그 생일에 맞춰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산티아고 성당에서 생일 미사를 꼭 드리겠다는 얘기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사연이 이렇게 제각각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 길을 찾아오지만,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사람이 많을 터이다. 내가 산티아고 길을 간다고 하자 한 후배가 말했다. "그렇게 긴 여행을 하려면 건강과 시간, 그리고 돈이 있어야 하는데 참 부럽습니다"라고. 얼핏 생각하면 그 말이 틀림이 없지만, 곰곰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나도 거기에 합당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건강이 좀 좋지 않고 시간이 쪼들린 사람도, 그리고 돈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꼭 가야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결국 의지와 선택의 문제다. 이 길을 가면서 만났던 92세 할아버지, 말기 암을 앓고 있다는 아주머니, 그리고 없는 시간 쪼개어 나왔다는 영국 아가씨, 공장에 다닌다는 독일출신 남자. 이런 사람들이 좋은 예다.
산등성이에 포도밭이 계속된다. 농부가 포도밭을 돌보고 있다. 인사를 건넸더니 "부엔 까미노" 손을 흔들어 대답해준다.
마을을 벗어나니 아스라한 밀밭이 시작된다. 저 멀리 까막까막 사람들이 둘씩 셋씩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밀밭길이 30리라고 안내서에 적혀있다. 30리 밀밭길... 그런데 며칠 후면 이보다 훨씬 넓은 메세다 평원을 걷게 될 것이라고 한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아귀다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부러울 수 밖에.
'Walk with Smile' 누군가 팻말에 글씨를 써 꽂아놓았다. 힘든 길이 시작된다는 의미인가 보다. 밀밭 한 가운데 헤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헤이, 말먹이로 사용하는 마른 건초를 묶어놓은 뭉치다. 넓은 땅, 풍부한 물이 있으니 사람만 부지런하면 먹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겠다.
밀밭이 끝나가는 지점 쉼터에서 김 사장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만났다. 저만치 멀리서 이상한 모자를 쓴 부부가 걸어오고 있다. 저분들 틀림없이 중국인일거라고 얘기하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한국인 부부다. 옷 입는 모양이야 각자가 알아서 정하는 것이니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겠지만, 여하튼 좀 우스운 모습이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그러고 난 다음부터, 김 사장은 저 부부를 만날 때마다 "아, 그놈의 모자를 좀 바꾸면 안 될까" 조크를 던지곤 했으니까.
1시30분경 로스 아르꼬스(Los Arcos) 도착. 알베르게를 정해놓고 시내 산책을 나왔다. 자그마한 도시다. 이 도시는 15세기와 16세기에 번성했는데, 나바라 왕국과 가스티야 왕국 국경에 자리잡고 있어서 두 왕국 어디에도 세금을 내지 않는 특권을 누렸다고 한다.
Santa Maria 성당 앞 광장에 순례객들이 앉아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게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음식점 앞에는 한글로 된 안내가 어김없이 붙어있다. 김 사장네 부부와 함께 그 중 한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와인 한 잔을 곁들였다. 스페인 와인에 입맛이 길들여지고 있다.
집에서 가지고 온 아답터를 잃어버려 카메라 충전에 애를 먹었는데 이곳 잡화상을 찾아가서 구했다. 2유로다. 여행 중에 필요한 물건이 한 가지만 없어도 많이 불편하다. 그래서 짐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6시에 시작하는 산타마리아 성당 저녁 미사에 참석했다.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바로크 t스타일의 장식과 고딕 양식의 회랑, 그리고 1516년에 만들었다는 성가대의 좌석, 내부를 빙 둘러 장식된 섬세하고 살아 움직이는 듯한 조각품들, 청동작품에 금을 도금한 성당의 화려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16세기에 만들어진 르레상스 양식의 타워는 30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한다.
화려한 성당 내부.
화려한 성당 내부.
이 작은 도시의 한 성당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이 나라 스페인이 세계를 지배했던 시절, 얼마나 많은 재물을 세상으로부터 빼앗아 왔을까, 얼마나 큰 영화를 누렸을까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렸을까를 함께 생각해본다. 미사가 시작된다. 음악이 울려 퍼진다. 장엄하다.
알베르게 돌아와 보니 엊그제 만났던 영국 이 교수, 보스톤에서 왔다는 문성희 학생, 그리고 이 선생 부부가 주방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세진이는 버스로 도착했고, 가희는 부르고스로 가고 지은이는 에스텔랴에서 쉰다고 한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이렇게 만나고 흩어지고 하면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함께 걸어간다.
침대에 누웠다. 목이 칼칼하여 수건을 물에 적셔 널었다. 잠을 잔다는 것은 잠시 죽음을 연습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살아있는 동안 나는 무엇이었나. 누구에게 저기 저 물수건만큼이라도 도움을 준 적이 있었을까. 정채봉 시인이 쓴 '수건'이라는 시 한 편이 생각난다.
"눈 내리는 수도원의 밤 / 잠은 오지 않고 / 방안은 건조해서 / 흠뻑 물에 적셔 널어놓은 수건이 / 밤 사이에 바짝 말라버렸다 / 저 하잘것 없는 수건조차 / 자기 가진 물기를 아낌없이 주는데 / 나는 그 누구에게 / 아무것도 주지 못하고 / 켜켜이 나뭇가지에 쌓이는 / 눈송이도 되지 못하고"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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