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로스 아르꼬스-로그로뇨-나헤라까지 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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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9>로스 아르꼬스-로그로뇨-나헤라까지 58.6㎞

"확 트인 들판 길은 정결한 순례의 행로 잘 지어진 성당에선 숭고한 신앙 느껴져"

아침 햇살에 그림자가 길다. 산천이 평화롭다.
6시 10분 출발. 어둠 속을 한참 걸었더니 먼동이 튼다. 아침 햇살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길가엔 배추꽃이 노랗게 피어, 밀밭의 녹색과 잘 어울린다. 멀리 동산 위에 마을에도 따뜻한 햇살이 비추인다. 산천이 평화롭다.
Sansol 마을이다. 식전 80리라더니 어느새 20리 정도를 걸었다. 밋밋한 산등성이에 포도밭과 밀밭, 그리고 간간히 올리브 농장이 섞여있다. 순례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간다. 걷기 대회도 아닌데 죽을 둥 살 둥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이 보인다. 좋은 술은 코와 혀로 음미하면서 천천히 마셔야 제 맛이 나는데, 이 길을 저렇게 걷는 건 비싼 양주를 막걸리 사발에 부어 꿀꺽꿀꺽 들이키는 격이 아닐까.
확 트인 넓은 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가리, 저 넓은 길을 / 힘차고 자유롭게, 내 앞에 펼쳐진 세상 / 내 발길 가는 곳 어디든 길게 이어진 갈색의 길 // 떠나는 길에 나는 행운을 바라지 않으리 / 나 자신이 행운이니 /... 기꺼운 마음으로 씩씩하게 이 광활한 길을 떠나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한 구절이다.
아내는 어디만큼 걷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길가에 돌멩이들을 올려 탑을 만들어 놓았다. 무엇을 바라면서 저렇게 크고 작은 돌들을 쌓아 탑을 만들었을까.
이 선생 내외가 걸어가고 있다. 공무원을 은퇴한 분이다. 특별한 복장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선생 내외가 걸어가고 있다. 공무원을 은퇴한 분이다. 특별한 복장으로 눈길을 끌었다.
작은 마을 둘을 지나니 Viana라는 마을이 나온다. 옛날 탬플 기사단이 이곳에 머물려 화폐를 환전해주고 관세를 징수한 역사적인 도시라 했다. 언덕을 올라서니 장이 섰다. 넓은 광장에 갖가지 물건을 팔고있다. 토마도, 호박을 비롯한 먹거리부터 옷가게와 일용품 가게까지 제법 큰 장이다. 사람들이 붐빈다.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도시 다운타운으로 들어선다. 중년 남성이 리어카에 쓰리기통을 싣고 어디론가 버리러 가고 있다.
도시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게 돌로 만든 3층집이다. 나무로 만든 둔중한 문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한 번 지어놓은 건물에 대를 이어 몇 백 년씩 살아가고 있으니 주거지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다.
국보 1호 숭례문을 개축하고 나서 날림공사라며 말이 많은 우리와는 달리 처음부터 집을 튼튼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이 나라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82년에 짓기 시작하여 130년이 넘는 지금까지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지 않는가.
순례자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방이 없으면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가야 한다.
순례자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방이 없으면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가야 한다.
성당 앞에서 쉬고 있는 아내를 만났다. 그레고리 성당이다. 육중한 건물과 함께 정교한 돌조각으로 장식한 입구가 눈길을 끈다. 함께 안에 들어가 조배를 드렸다. 어제 저녁 들렸던 로스 아르코스 성당 비슷한 수준으로 내부가 화려하다.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도 광장에 나와 산책을 하고 있다.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동양인이 있어 인사를 했더니 빙긋이 웃는다. 중국인 2세쯤으로 보이는데 영어가 통하지 않아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는다. 이곳에 살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마을을 벗어나니 다시 포도밭 풍경이다. 어제 만났던 이선생 내외가 저만치 걸어가고, 김사장 부부도 보인다. 길 가운데 돌맹이를 모아 화살표를 만들어 놓았다. 조금 더 가니 하트 모습도 보인다. 갖가지 모양으로 순례자들을 응원하고 있다.
소나무 숲길을 걸어간다. 한국 소나무와 같은 종류다. 오랜만에 솔바람 소리를 듣는다. 소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다르다. 꼿꼿하게 뻗어있는 솔잎을 바람이 스쳐갈 때 떡갈나무나 버드나무 숲을 지날 때와는 다른 소리가 들리기 마련이다. 소나무 숲이 꽤 오래 계속된다. 이곳이 한국 어디쯤이 아닌가 착각이 든다. 개 두 마리와 함께 가는 부부를 만났다. 만나면 저렇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배낭이 여전히 무거워 보인다.
그나저나 그 동안 들렸던 이곳 성당들의 화려한 장식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을까. 어제 보았던 아르코스의 산마리아 성당, 그리고 오늘 들렀던 그레고리 성당은 물론, 별로 크지도 않은 아스텔라에 그토록 여러 개의 성당이 그렇게 큰 규모로 화려하게 지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수도원은, 하고 생각하다가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재정일치(祭政一致)였던 시대에, 대사제가 왕을 임명하던 그 옛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 한마디를 누가 거역할 수 있었겠는가. '신의 집을 단장한다는데' 어떤 사람이 감히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생각하니 의문이 순식간에 풀렸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천년이 넘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로그로뇨 도시 입구에서 할머니가 기념품을 팔면서 스템프를 찍어주고 있다. 안내서에 나와 있는 까미노에서 유명한 집이다. 돈나 펠리사 부인이 수 십년간 이곳에 살면서 순례자에게 무화과와 시원한 물, 그리고 사랑을 전해주었는데 92세 나이로 2002년에 돌아가셨다. 지금은 그녀의 딸 마리아가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저렇게 스템프를 찍어주고 있다. 여기서 스템프를 받지 않으면 순례길을 참석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적혀있는 안내책자도 있다고 한다. 먼저 온 순례자들이 세 명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로그로뇨는 11세기에 주교관이 있는 큰 도시다. 버드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넓직한 길이 시원하게 뚫려있다. Ebro강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넌다. 이 다리는 중세에 지은 것인데 1884년에 증축했다고 한다.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먼저 온 순례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한참을 기다리다 순서에 따라 방을 배정받는데 우리 앞에서 끝이 난다.
김 사장 부부와 함께 터덜터덜 걸어서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간다. 잘 곳을 찾지 못하면 다음 도시까지 더 걸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를 찾았다. 침대는 동이 났으니 강당에 메트리스를 깔고 자라고 한다. 이렇게라도 하룻밤 자고 갈수 있으니 감사할 수밖에.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지만 돈은 받지 않으니 나가면서 도네이션 함에 알아서 넣고 가라고 한다. 순례자를 위한 무료 숙박소인 셈이다.
빨래와 샤워를 끝내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큰 도시라서 마켙도 갖가지 물건들로 가득하다. 아주머니들이 마켙을 보는 동안 시내 뒷골목 술집 거리를 구경했다. 걸어가는데 취객들이 한 잔하고 가겠냐고 팔을 끈다. 술집 풍경이 재미있다. 젊은 아가씨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짓을 하며 지나간다. 광장에 나왔더니 어린이들이 소풍을 나온 모양이다. 선생님 말씀에 귀를 기우리는 표정이 재미있다. 올리브 새싹처럼 피어나는 저런 아이들을 보면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광장 곳곳에 청동으로 만든 동상이 서있다. 꼬마가 울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한국에서 국토횡단을 하면서 강원도 화천읍을 지날 때 꼬마가 고추를 내놓고 오줌을 싸고 있는 동상을 본 기억이 되살아 난다.
저녁 식사시간이 8시30분이다. 아내는 피곤하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고 나 혼자서 참석했다. 20여명의 순례자들이 식탁에 앉았다. 식사는 아주 간단하다. 셀러드가 먼저 나온다음 빵이 나온다. 그리고 감자와 호박을 넣어 끓인 국이 차례로 나온다. 와인도 곁들인 썩 괜찮은 식사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한다. 한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남쪽인가 북쪽인가 질문을 한다. 한반도의 사정을 간단히 설명하고 나서, 통일을 위한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메트리스에 누웠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란 말이 생각난다. 죽음을 기억하라, 는 뜻을 지닌 라틴어다. 14~15세기 중세 유럽의 탁발 수도회가 소중하게 여긴 설교 주제였다고 한다.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했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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