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열 시인 군서면 도장리 출신 |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고난을 견디다 못해 정든 땅을 떠나 국경을 넘었다, 뜻있는 사람들은 독립을 위해 국내외서 목숨 걸고 싸웠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이들에게 도움을 준 이도 독립군 못지않게 애쓴 사람들이다.
그 반대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일신의 영달을 위해 살아온 분들이다. 해방 정국에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그것을 감추고 싶은 쪽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들은 해방 된 나라에서도 대를 이어 떵떵거리며 살아가게 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세월이 흘러갔다. 그 사이 푸른 싹이 돋아나 '민족문제연구소'라는 민간단체가 엄청난 어려움을 극복하고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펴내게 된다. 사회 각 분야의 기라성(?) 같은 인물 4천776명의 이름이 사전에 올랐다. 해방 후, 64년이 지난 때였다.
이 일이 한국사회에 던진 파장은 컸다. 역사는 무섭다는 것을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살아온 행적은 언젠가는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 평가 받게 된다는, 그래서 함부로 살면 안 되겠다는 각성을 하게 해 준 말없는 경고가 되었다.
혹자는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라고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부끄러운 역사를 부끄러워하고, 공과 과를 있는 그대로 알리면 된다. 평가는 다음 사람의 몫이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한국의 시성'이라고 불리는 분이다. 그의 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명성에 걸맞게 <국화 옆에서>를 비롯 수많은 시가 걸려있었다. 많은 작품과 함께 "마쓰이 히데오! /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라고 읊은 '마쓰이 히데오 오장 송가'등, 친일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 ... /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전두환 대통령 탄신58회 축시'도 보였다.
장례식장에 잘난 자식만 세울 수 없듯이, 시인의 공(功) 과(過)를 보는 이가 평가하도록, 숨기고 싶은 작품까지 함께 전시한 기념관측의 공정한 처사가 돋보였다. 훗날, 어떤 이가 왜 친일을 하게 되었냐 미당에게 물었더니, "일본이 그리 쉽게 망할지 알았남" 답했다 한다.
광복절 아침에 역사를 다시 생각한다. 역사는 무섭다. 무서워야 한다. 그래야 통한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걱정이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치욕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 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나 혼자만일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영암군민신문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