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 낀 강둑을 걷는다. 강둑 가득 물이 흐른다. 들판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를 보는 것만도 배가 부르다. 강가 물풀 속에서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린다. 평화롭다. 해가 떠오른다. 산천이 밝아지더니 그림자가 앞장서 걷기 시작한다.
프로미스타(Fromista) 입구다. 안내서에 나와 있는 '까스띠아 수로'인 모양이다. 이지역의 물산을 가까운 항구에 나르기 위해 17세기 후반에 207㎞의 수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배를 들어 올리는 갑문식 수로의 흔적이 남아있다. 한국 어느 정부에서 홍보 했던 4대강 사업 비슷한 개념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저렇게 끝이 없다. '바다에 떠 있는 배를 육지까지 움직이게 할 수는 없을까'를 생각하던 인간들이 저렇게 배가 산을 넘어오도록 뱃길을 만들어냈다. 운하를 뚫고 갑문식 장치로 배를 들어올려 산을 넘어 육지 깊숙히 배가 드나들도록 했다. 인간들의 끝없는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만들어낸 결과다. 컴퓨터 하나가 감당해내는 역할을 생각해보면 호기심의 끝이 어디일까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때론 무섭기까지 하다.
이 넓은 벌에 수로를 따라 물을 공급하고 곡물을 옮기도록 했다니 역사적으로 이 지역이 농업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겠다.
프로미스타 시내 아담한 식당에 들러 아침을 먹었다. 마침 옆자리에 앉아있던 백인 할아버지가 한국인이냐며 반가워한다. 미군으로 평택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벌써 2주일을 김상교 선생 내외와 함께 걷고 있다. 아침에 출발하여 각자 걷다가 저녁에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는 형식이다. 이곳에 San Martin 성당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들르지 못하고 지나간다.
마을을 벗어나자 지평선을 향해 국도가 뻗어있고 그 길을 따라 순례자 길이 나있다. 밀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시원하게 뚫린 국도에 자동차가 띄엄띄엄 지나간다. 요즈음 스페인 경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도로를 달리는 교통량을 보면 경제현황을 가늠할 수 있다. 2005년에 평통방문단으로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평양에서 개성까지 가는 도로에 자동차가 많지 않은걸 보면서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례자들이 걷고 있다. 혼자 걷고 있는 한국 여자를 만났다. 서른쯤 됐을까. 조미정이라 했다. 공기업에서 4년 근무하다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 까미노를 걷고 있다고 한다. 어려운 경쟁을 뚫고 취직을 했지만 직장생활에 말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 길은 이렇게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길이 되고 있다. 야고보 성인이 함께하기 때문인가 보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한다. 김상교 선생과 나란히 걷는다. 아버지가 육군 장교였다고 한다. 어머니와 관련된 외갓집 얘기를 들려주는데 한 편의 소설이다. 사연이 절절하다. 개인이 살아온 흔적이 바로 역사다. 6·25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에게 남겨진 상처가 지울 수없는 흉터로 각자의 가슴 속에 남아있다.
비야까자르 데 시르가(Villacazar de Sirga) 마을이다. 산타마리아 템플기사단 성당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까미노에서 템플기사단이 세 곳 있다는데 그 중 하나다. 천 년 역사의 흔적을 따라 까미노가 이어진다.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벽돌 하나가 쌓여 건물을 이루듯 개인의 삶이 모여 역사를 이룬다. 부끄러운 역사라도 괜찮다. 진창의 역사라도 또 어쩌겠는가. 사람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넘어졌다는 자각이 없으면, 일어서려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진창과도 같은 더러운 역사를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절망의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냉혹한 진단이자, 현실을 넘어서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다. 우리는 부끄러운 역사에서, 그리고 더러운 진창으로부터 일어나야만 한다. "넘어진 자리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지눌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오늘 만난, 조미정이라는 젊은이도, 함께 걷는 김선생도, 어제 만났던 독일인도 또 아무개도, 그리고 나도. 넘어지고 찢긴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 일어서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는지 모른다.
스반을 만났다.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만나고 헤어지면서 이 길을 걸어간다. 엄청 무거워 보이는 짐을 지고 잘도 걸어간다. 서른두 살이라더니, 그 나이엔 저럴 수 있는 걸까.
1시쯤 오늘의 목적지 까리온(Carrion)에 도착했다. 인구 2천500명 정도의 도시란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수녀님이 접수를 받고 있다. 아내가 바쁜 수녀님의 비위에 맞게 뭐라고 고분고분 말대답을 잘한 성싶더니, 그래 그랬나? 4인실을 배정받았다. 오늘은 특실에서 자게 생겼다.
카메라 칩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1천800장을 찍었다. 참 많이도 찍었다. 종이필름 시대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마을 상점에 나가 10기가짜리 칩을 17유로에 샀다. 그나마 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작은 마을이라 행여 살 수 없을까 싶어 마음 졸였다. 미국에서 충분하게 준비해 올걸 그랬다. 길에서 어제 잠깐 눈인사를 했던 전직 국회의원이란 분을 만났다. 한국사람인 것만도 반가워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다른 알베르게에 머물고 있는 모양이다.
광장 복판에 성모님상이 서 있는데, 독특한 모습이다. 광장에 놓인 의자가 돌로 만들어 위에 나무를 덧붙혀 놓았다. 저런 의자는 처음 본다. 돌집, 돌담, 돌길, 돌로 만든 의자. 그만큼 돌이 많다는 의미일까. 아내가 광장 프라다나스 나무 근처 의자에서 쉬고 있다. 걷고, 쉬고, 걷고, 쉬면서 탈 없이 까미노를 마쳐야 한다.
스파게티를 해 먹었다. 먼 길을 걸어왔으니 무엇이던 맛이 없으랴만, 맛있다. 식사 후 마켓을 다녀왔다. 꽤 크다. 걷다가 지치면 쉬어야 겠지만, 알베르게, 마켓 등을 고려하여 큰 도시에 머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작은 마을도 나름 좋은 점이 있겠지만.
마켓을 보고 오는 길에 박물관에 들렀다. 성당의 역사가 한 곳에 모여 있다. 제의, 제기, 악보, 성상 등이 시대별로 잘 정리되어있다.
문어와 하몽, 와인을 사왔다. 문어와 하몽은 와인 안주로는 궁합이 그만이다. 와인 한 잔이 지친 몸을 위로해준다. 세진, 기호승, 알렉스, 조윤주 등, 한국 젊은이들도 저희끼리 식사를 하고 있다. 길에서 국회의원이란 사람을 만났다고 말을 꺼내자 누군가, 그 사람 어제 저녁 동행하는 젊은 여자 애하고 격에 맞지 않게 희희덕거리더라며 핀잔을 준다. 하늘 아래 드러나지 않는 게 없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종이 울린다. 이곳 알베르게에 머물게 된 순례자들이 함께 모였다. 각자의 소개가 끝나자 수녀님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리드한다. 각 나라 사람이 제 나라 노래를 부르는 순서다. 코리언 차례가 왔기에 내가 지난번처럼 아리랑을 불렀다. 그리고 나서 아리랑을 배워보자며 따라 부르라고 했더니 잘도 따라한다. 이러다가 이번 순례길에서 아리랑 전도사가 되는지 모르겠다.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 다녀왔다. 성당이 웅장하고 화려하다. 이 도시에 16세기까지 열두 개 성당이 있었다는 데 지금은 여섯 개로 줄었단다. 이 지방 사람들의 지난 시대의 삶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저녁은 4인실에서 제법 오붓한 잠을 잔다. 까미노를 어느새 절반 정도 지나고 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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