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해설사에게 듣는 내고향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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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에게 듣는 내고향 문화유산

구계 박이화에 대하여

그는 1739년 구림에서 함양박씨로 태어났다.
우리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큰 벼슬을 한 것도, 입신양명을 하여 가문을 빛낸 것도 아닌 문중을 통해 내려오는 그의 작품집인 ‘구계집’을 통해서다.
여기서 그의 세계를 알 수 있는 여러편의 작문을 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만고가, 낭호신사, 강촌소옥기, 기타 문중에 관한 글이다.
만고가와 낭호신사는 가사문학의 범주에 속하며, 특히 만고가는 역사적인 성인과 문장가 등을 연대순으로 읊은 교육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낭호신사는 전편과 후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편은 구림을 아주 아름답고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후편은 구림에 살고 있는 자신을 노래한 것이다. 낭호란 낭주와 서호를 합친 말이며 구림을 의미한다.
또한 강촌소옥기에서는 어렵고 궁핍하게 살지만, 학문에 대한 열의를 알 수 있는 내용들이 잘나타나 있다.
함양박씨세보(咸陽朴氏世譜)에 ‘字和而 號龍溪 通德郞 孝行根天 泣血廬墓 文章鳴世 ?名揚屋 意未大闡 人人皆寃之 作萬古歌 行于世 生己未 卒癸卯 墓鶴山面 栗峙午坐(자는 화이, 호는 용계, 통덕랑 벼슬에 오르고, 효행이 하늘까지 뻗어 피눈물 흘리며 시묘하다, 문장은 세상을 울렸으며, 이름을 떨치고 집안을 올리다. 뜻을 크게 펼치지 못해, 사람마다 모두 원통해 하다. 만고가를 지어 세상에 내놓다. 1739생 1783졸, 학산면 율치 午時방향에 묻히다)라고 쓰여져 있지만 통덕랑 벼슬길은 오르지 못한 것 같다.
구계집(龜溪集) 강촌소옥기(江村小屋記)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일어서면 갓이 휘고 누으면 다리를 뻗지 못한 단칸방에서 자고, 흥얼거리고, 책읽고, 글쓰고 등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았으며 하늘을 상량으로, 땅을 방바닥으로, 해와 달을 대들보로, 별을 시렁으로, 강산을 병풍으로, 구름을 담장으로 또다른 집을 갖고 있다. 道德으로 기초하고, 仁義로 문달고, 禮樂으로 집을 엮어, 文章으로 치장한다. 종형과 하룻만에 만들다.(발췌번역함)
위의 글에서는 안빈낙도하며, 시상이 풍부하며, 인의예지가 올바르며, 해학과 기지가 넘치며, 호탕한 일면도 볼 수가 있다. 서가에는 사서삼경, 의학, 약학에 대한 책, 당송8대가, 농업에 관한 책, 화훼류책 등이 구비되 있었다.
낭호신사는 애석하게도 원문이 소실되어 없었고 부녀자들에게 읽히기 위해 순한글로 필사되어 내려오는데 현재의 한글 서예가들이 원래 한글체인줄 알고 곧잘 낭호신사를 작품화하고 있다. 44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져 애석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입향조 박성건이 53세에 급제한 걸로 봐서 구계에게도 아직 기회가 많을 나이에 몰(沒)해 안타까움이 더한다. 후세도 없어 益哀痛하다.
다음 詩 한수로 그의 詩想과 재치를 엿보기로 한다.
<科擧 負太太 (과거 부태태) 과거를 꼴등하니
人人 見山山 (인인 견산산) (나를본)사람마다 먼산을 바라본다
羅州 那晝去 (나주 나주거) 나주를 어느 낮에 지나치고
靈巖 寧暗來 (영암 영암래) 영암을 차라리 한밤중에 온다.>
지금 구림은 대대적으로 한옥건축을 권장하고 있다. 이런 하드웨어에 구계같은 소프트웨어를 더 발굴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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