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첫 ‘仁壽’ 銘 분청사기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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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첫 ‘仁壽’ 銘 분청사기 발굴

(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 학산면 상월리 도요지 발굴조사 결과

학산면 상월리 도요지에서 전라도에서는 최초로 ‘인수(仁壽)’ 명(銘) 분청사기가 발굴됐다.
또 ‘사(司)’ 명 분청사기와 집단인화문 분청사기, 제기, 상품의 기물을 번조할 때 사용한 갑발 등도 함께 출토되어 상월리 가마터가 공납용 고급 분청사기를 만들던 곳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자기소와 도기소 가운데 한 곳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군은 지난 2월13일 오후 학산면 상월리 분청사기 도요지 발굴현장에서 (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에 의뢰한 발굴조사에 따른 지도위원회의를 열고 유적의 성격규명, 보호대책 등을 토의했다.
조사단(단장 한성욱 민족문화유산연구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조사결과 가장 주목되는 유물은 ‘仁壽’銘 분청사기”라면서 “이는 세종시대 이후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제작되어 왔고, 경상도 이외 지역에서는 충남 연기군 금사리에서 확인된 예가 있으나 전라도에서는 영암 상월리가 최초의 사례로 그 학술적 의의가 매우 큰 중요한 유물”이라고 밝혔다.
仁壽는 정종2년(1400)에 태종의 왕세제부로 처음 만들었던 특수관청인 인수부(仁壽府)를 의미한다. 敬承府(태종2년)와 順承府(태종18년)로 개칭했고, 세종 즉위년(1418) 태종의 上王府로 복설되어 세조10년(1464)까지 지속됐다. 따라서 ‘仁壽’銘 분청사기는 1418∼1464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또 함께 출토된 ‘司’ 銘 분청사기의 司는 왕실의 식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 사선서(司膳署)을 의미하는 것으로, ‘司膳’ 銘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제작기간은 1372∼1420경으로 오랫동안 만들어졌으며, 제작지도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 등 넓게 확인되고 있다고 조사단은 밝혔다.
조사단은 특히 “‘司’ 銘 분청사기와 ‘仁壽’ 銘 분청사기가 수습되고, 집단인화문 분청사기, 祭器, 上品의 기물을 번조할 때 사용한 갑발 등이 출토되고 있는 점으로 미뤄 상월리 도요지가 공납용 자기를 만들었던 자기소 또는 도기소였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면서 “특히, ‘司’ 銘과 ‘仁壽’ 銘은 상월리 가마터가 공납용의 고급 분청사기를 만들었던 가마임을 알려주고 있어 주목 된다”고 지적했다.
또 “상월리는 유물의 중요성과 함께 주변에 6기의 가마터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이 일대가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자기소와 도기소 가운데 한곳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이번 발굴조사가 영암지역 분청사기의 생산과 유통 구조 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며, 상월리 일대에 대한 전면적인 학술조사가 추가로 실시된다면 가마 구조뿐만 아니라 관련시설, 다양한 유물이 추가로 확인함으로써 영암지역 분청사기 가마의 전모가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편 학산면 상월리 분청사기 가마터는 경지정리와 농로, 배수로 등을 정비하면서 분청사기와 도요구, 가마 벽체편 등이 넓게 흩어져 확인되면서 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지난 1월4일부터 오는 3월15일까지 (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에 조사를 의뢰했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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