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성지 티베트를 순례하는 불자들에게 가장 힘든 여정이 바로 수미산 순례다. 티베트인들은 카일라스를 수미산이라고 믿는다.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출발해 다시 돌아오는데 대략 보름정도 걸리는 수미산 코라를 한 바퀴 돌면 업장이 소멸하고, 다섯 바퀴를 돌면 금생에 성불한다고 할 정도다.
영암 군서면 출신으로 전남과학기술진흥센터 센터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보환씨가 수미산 순례길을 다녀온 뒤 쓴 고행기를 보내왔다. 수회에 걸쳐 이를 연재한다.<편집자註>
"순례 시작 전 참회와 감사의 기도를 하면서 걷기로 원력(願力)을 세웠다. 우선 부처님께 감사하다. 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지 얼마 되지는 않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변해가는 나를 보며 스스로 감사하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무사히 코라를 돌 수 있어 감사하다. 이렇듯 이번 순례 길은 이래저래 내 인생에 큰 의미가 있다."
조식 후 600km(10시간)를 이동하여 다르첸에 도착해야 하는 날이다.
가는 도중에 아름다운 마나사로바 호수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4천586m에 자리한 담수호다. 성스러운 카일라스 발치에 자리 잡고 있어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호수의 수면에 눈 덮인 수미산의 모습이 비친다. 일단 마나사로바 호수에 도착하면 이때부터는 멀리서나마 수미산을 볼 수 있다.
섬세한 푸른 에메랄드빛의 호수는 정화와 부활의 힘이 있어 육체나 정신의 고통을 없애준다고 전한다. 마나사로바 호수에서 멀리 떨어진 성산 카일라스는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티베트에 와서 처음으로 수미산을 바라보기 때문이리라.
'나는 무엇을 구하려고, 무엇을 얻으려고,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비우고 참회하려고, 여기까지 왔을까?…'
내일이면 출국한지 7일째다. 카일라스를 보기 위한 코라의 시점에 도착한다. 마나사로바 호수에 손목을 적신 뒤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산맥의 눈 덮인 모습과 티베트 고원 속 산 능선이 만들어낸 자연의 색상들이 차창 밖에 펼쳐져 눈을 뗄 수가 없다.
순간 저 멀리 다르첸이 보인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을이다. 몇 년 전에 왔었다는 청주 신 원장이라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작은 건물이 많이 있는 초라한 시골 길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때와 많이 변했고 검문하는 중국군들도 생겼다. 검문을 마친 뒤 다르첸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방 배정과 함께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잠자리를 준비한다.
고행(苦行)의 수미산(3일간의 코라)
카일라스의 거대한 에너지를 간직한 성스러운 산자락에 있어 순례자의 베이스캠프라고 할 수 있는 다르첸 마을은 조용히 잠들어간다. 마치 무한한 우주와 신비스러운 텔레파시를 주고받은 지구별의 중심안테나처럼 조용히 잠들어간다. 천신만고 끝에 바다와 산과 강을 건너 7일 만에 8천km를 달려 마침내 도착했다. 시사팡스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으나 기대감으로 떨리는 가슴 때문에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때마침 서울 거사가 별을 보자며 밖에 나가자고 한다. 밤하늘은 온통 오색영롱한 별판이다. 바로 내 머리 위에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삼태성, 큰곰자리 등 일일이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저것이 진정한 하늘이 구나! 이렇게 맑고 고운 별들이 있었다니, 우리 사바 세상에도 있을까? 그것은 아름답다거나 환상적이다같은 감성적 차원을 넘은 초자연적인 것이다. 이것에 비해 내 존재감은 먼지 같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구나. 참으로 우주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감사해야할 것 같았다.
어느덧 아침이다. 배낭으로 가져갈 짐과 야크로 운반해야 되는 짐들을 구분하고 각자 짐을 꾸려 출발 준비를 한다. 수미산 순례는 1코라, 2코라, 3코라 구분해 총 53km로 3일간 서쪽에서 동쪽으로 수미산을 한 바퀴 돈다.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점심은 가벼운 도시락으로 야크가 운반한다. 순례를 시작하기 전 참회와 감사의 기도를 하면서 걷기로 원력(願力)을 세웠다.
우선 부처님께 감사한다. 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지 얼마 되지는 않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변해가는 나를 보고 스스로 감사한다. 또 어려움 속에서도 무사히 코라를 돌 수 있어 감사하고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일들이 감사, 또 감사하다. 이번 순례 길은 이래저래 나의 인생에 큰 의미가 있다.
성산 카일라스는 불교를 비롯해 힌두교, 자이나교 등 4대 종교인들이 이생의 죄업을 정화하여 다음 생을 준비하기 위하여 순례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원시종교시대부터 업장소멸을 위한 순례가 전통적인 의례로 내려오는 정화설(淨化設)에 의하면 원력을 가진다고 해서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전생부터 준비하여 속세의 인연이 있는 자만이 이 성산을 순례할 수 있다고 한다.
성산순례를 발원하고 계획하여 실행에 옮길 즈음이면 고대 아닌 현대에서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만난다. 열흘이 넘도록 고도 4천500∼5천600m의 지역에 체류해야 하는 신체상의 고통에서부터 중국의 접경지인 티베트를 여행하는 사회적 불편 등으로 힘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
그동안 나는 알게 모르게 육근(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과 육식(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으로 과거생, 현재생, 미래생에 수많은 잘못을 했고 앞으로도 수없이 잘못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거에 잘못했던 육근과 육식의 과오와 미래생에서 잘못할 수밖에 없는 나의 인연법들의 과오들을 성산의 부처님과 불보살님들께 참회할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8천km 이상 떨어진 곳 수미산, 성스러운 부처님 성당인 이 자리에 와서 순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신들께 감사, 또 감사한다.
1코라는 평지 수준에서 마지막에 언덕을 오르다 1박을 하는 게스트하우스가 나온다. 계곡과 물이 흐르는 시냇가를 따라 순례길이 있다. 순례 온 무리들은 티베트인, 인도인, 서양인들 몇 명이 전부다. 지금까지 7일간은 차량을 이용해 이동했기 때문에 체력을 소모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걸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평지라지만 해발 5천200m 이상이어서 호흡이 가쁘다. 걸을 수가 없을 정도다. 티베트인들은 가족끼리 모여 순례를 하는지 웃고 떠들면서 걸었지만 우리 일행은 정반대다. 점심을 위해 순례자들을 위한 주점 같은 건물 주변에 자리를 마련했다. 가이드가 마련한 점심은 간이 도시락으로, 과일과 약간의 빵뿐이다. '이것을 먹고 어떻게 견디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그것은 간식거리도 아니다. 먹기도 힘들었고 식욕도 없었다. 밥이었으면 좋으련만.
힘겹게 올라가기 시작한 순례길 주변에는 다양한 상들이 즐비해있다. 사천왕상, 셋방광목천황 등을 비롯해 무섭게 노려보는 상도 있다. 성산을 가운데 두고 수많은 상들이 호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20km를 걸었다. 걸을수록 성산은 점점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장엄함과 엄숙함에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좌측의 상들은 성산을 중심으로 바깥에서 안으로 에워싸는 느낌을 받았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오후 8시경이다. 배정받은 숙소는 다행히 최근에 건축한 조립식 건물로, 말로만 들었던 천막이 아니라 참으로 다행이었다. 우리는 짐을 풀고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발을 닦고, 가이드가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 침대에 누워 잠시 쉬었다. 저녁은 또 밥이 아니라 라면이란다. 오늘 식사는 정말 '꽝'이다. 체력보강을 해야 하는데 라면으로는 어림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간단히 정리하고 머리 위 수미산을 바라보며 삼배한 뒤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사진설명>
1. 수미산 순례길 1코라는 멀리 성산을 가슴에 않고 동으로 동으로 돌아서 3일간 걸어가야 한다.
3. 마나사로바 호수에서 바라다보는 성산의 모습은 마치 한 뭉치의 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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