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암사는 도선 국사 출가성지 복원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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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암사는 도선 국사 출가성지 복원 서둘러야

도선국사실록에 출가장소는 '월암사' 기록 복원 계획 절실

월암사·도선국사 관계 규명·복원 위한 추가 조사도 필요
월출산 월암사는 도선 국사가 출가한 성지이며, 이에 따라 복원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월출산 월암사(주지 자현 스님)와 박종열 교수 등은 "도선국사는 영암에서 출생한 풍수지리의 대성자로 알려져 있고, 우리 국민문화와 생활문화에 기여한 인물"이라면서, "도선국사의 출가 장소를 밝히는 것은 그의 출발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알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도선국사실록」에는 도선 국사의 출가 장소를 '월암사'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찬술자가 영암에서 전해지는 도선 국사의 기록이나 전언을 토대로 했음에 틀림없다"면서, "특히 최유청의 '도선 비문'(海東 白鷄山 玉龍寺 贈諡 先覺國師 碑銘 幷序)을 보았을 것으로 믿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월유산 화엄사를 그대로 전재하지 않고 월암사라고 기록한 것은 그만한 근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실록의 찬술자가 도선 국사의 출가지가 월남사로 기록된 것을 와전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도 고증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실록의 찬술자는 도선과 관련된 여러 기록을 참고해 출가 장소를 월암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월유산 화엄사'가 '월암사'로 귀착됐다고 강조했다. 또 이는 월유산이 당시 영암 부근의 산이었으며, 지금의 월출산으로 파악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도선 국사 출가 무렵인 9세기 전반기에 이미 영암지방에 불교가 널리 퍼져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유청의 '도선 비문'에 있는 화엄사가 월암사인지에 대해 이들은 "도선은 월암사에 출가해 삭발했으며, 이곳에서 화엄을 배운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월암사가 처음에는 화엄사로 불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월암사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도선 국사의 출가 장소는 월출산 월암사가 확실하며, 이는 최유청이 도선 국사가 삭발한 곳과 화엄을 익힌 곳을 적는 과정에서 월출산 월암사를 월유산 화엄사로 적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암사의 위치와 관련해 이들은 "월출산에 소재한 사찰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구체적인 장소가 어디인지 확실하지는 않다"면서도, "군서면 월암마을 박형재씨 등 주민들에 따르면 월암사가 예전에 '월나사'로 불리다가 나중에 '월암사'로 바뀌었다고 말하고 있어 고려사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월암마을 뒤편 폐사지가 월암사 터"라고 지적했다. 즉, 고려사의 기록에는 '월나사'에서 '월생사', 그리고 '월암사'로 바뀌었다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월암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도선 국사 낙발지지’라는 글씨가 돌에 새겨져 있다"면서, "이는 적어도 도선 국사의 출가 장소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도선 국사의 출가지인 월암사지에는 조선 초기 제작된 와편과 분청사기 등 다량의 문화유적이 발굴된 바 있다.
특히 발견된 와편에는 '月山寺造', '月山君', '丁', '乙' 등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됐다. 또 이는 월암사가 조선 초 월산사로 불러졌을 가능성과 함께, 월산사에서 기와가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도선국사실록」에 월산사 위에 월암사가 위치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주목된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이 같은 사실들을 근거로 이들은 "최유청의 '도선 비문'에 나오는 도선 국사의 출가 장소인 월유산 화엄사는 영암읍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월출산 월암사가 맞다"고 결론짓고, "도선 국사는 월암사에서 출가해 화엄을 수학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선을 접할 수 있었다. 월암사는 도선 국사의 제자인 '경보'같은 위대한 선승이 출가한 곳이기도 하다"며 성지 복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지난 2004년 9월 이뤄진 월암사 발굴조사에 나선 한 관계자는 "조사기간이나 예산 등의 제약 때문에 사찰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사찰이 어느 시대에 창건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면서, "반면에 고려시대 유구까지 확인되고 있어 앞으로 보다 세밀한 조사를 통해 도선국사와의 연관관계를 보다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월암사와 도선 국사와의 관계 규명과 복원을 위한 추가적인 조사도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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