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사랑과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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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사랑과 봉사

”세상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요/ 인연의 실타래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 만남도 인연이요/ 이별도 인연이다./ 인생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는 법/ 문은 문이로되 문짝이 없으니/ 노크도 필요 없는 무문(無門)이네/ 마음의 문, 생사의 문, 대도무문(大道無門)/ 스스로 매이고 스스로 풀리는구나./ 텅 빈 공간, 문하나 사이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살림살이/ 그대는 오늘 어디로 향하는가.”
지난 5월 2일이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였다. 전 세계 인류 가운데 생일 잔칫상을 가장 크게 받는 분은 아마도 석가와 예수 단 두 분 뿐인 것 같다. 그것도 이미 가신지 석가는 2553년이요 예수는 1976년쯤이나 된다. 과연 그 오랜 세월 우리 인류가 그 분들을 잊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만큼 그 두 분은 우리에게 큰 교훈과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헤맬 때 어둠 속의 빛이 되고 나침반이 되어주는 인생의 길잡이 인류의 스승들은 한 결 같이 마음을 비우고 바람과 구름 물같이 살며, 빛과 소금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말이다… .
인간의 병통, 그 끝없는 욕망과 갈애(渴愛)는 그 신분이 무엇이든 간에 패가망신과 역사의 오욕을 남길 것이 자명한데도 마치 불나비가 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불속으로 날아드는 것처럼 인간도 역시 어리석기는 마찬가지, 버스 떠난 다음에 손들고 그 사람이 죽은 다음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정말 한심하고 또 한심하다. 필자는 얼마 전 누군가 술좌석에서 축배제의를 받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3껄을 제안하는 걸 들은 바 있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 좀 더 잘해줄걸, 좀 더 이해할걸, 좀 더 사랑할걸”이라고 말하고 나서 “껄껄껄 3번 웃자”고 제안하였다. 정말 민망스런 웃음이 되고 말았지만 그 여운은 주위를 잠시나마 숙연하게 만들었다.
자, 요즘 꽃피고 새가 노래하고 천지자연은 더 없이 아름답고 향기로운데 들리는 소식은 날로 실업률이 증가하고 고물가, 고유가, 거기에다 전직대통령의 비리까지 터져 나와 우울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땅을 치며 통곡할 수도, 분노마저 사치스러운 우리는 그래도 다시 한 번 일어서야 한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 짚고 일어서라는 보조국사 지눌 큰스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뭔가 해내야 한다. “Yes. we can” 이라고 소리 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리카 케냐의 혈통임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자리에 오르지 아니했는가. 강력한 긍정만이 부정을 물리치고 우울증을 퇴치하며 신바람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희망이 보약이다. 보약은 다리는 수고쯤은 감수해야 한다. 마당의 풀 뽑고 낙엽 쓸 생각조차 안하는 사람은 정원을 감상할 권리조차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진정 문화인이요 21C 글로벌형 현대인이라 자처한다면 연휴라 해서 무턱대고 산으로 들로 나갈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산사를 가족과 함께 찾아가 성현과 만남의 인연을 맺는 소중한 기회를 가져보길 바란다.
부처님이 어떤 분인가?
문짝이 없는 집에서 사셨고, 문턱이 없는 집에서 거하셨으며, 울타리가 없는 집에서 일생을 살면서 중생교화, 전법도생의 길을 가셨던 분이 아닌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연잎차 마시기를 꺼린다거나 범종, 목탁소리를 멀리한다거나 초파일에 사찰 방문조차 터부시하는 그런 졸장부는 되지 말자.
필자는 십 수년 전부터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성당을 찾았고 25일 크리스마스에는 교회를 찾아가 예배에 참석하여 아기예수 탄생을 경하 드려왔다. 그것이 남북통일, 세계평화에 초석이 되는 일로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래 하나이다. 둘이 아니고 각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천지우주 만물이 내 손안에 들어온다. 그래야 남이 잘되는 일도 기쁘고 힘찬 격려와 박수갈채도 보낼 수 있다.
/도산스님 광주 대각사 주지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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