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생들은 영암읍은 물론 군서, 덕진, 학산 등 영암 관내뿐만 아니라 강진, 장흥 등지에서 온 어르신들이다. 60대 젊은이들(?)도 있지만 망팔(望八)은 물론 망구(望九)의 어르신도 있다. 모두가 강사의 한 줄 한 줄 해석이 앉은 자리에선 귀에 쏙쏙 들어오다가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들이다. 하지만 옛 성현의 가르침을 배운다는 자부심만은 가득 차 모두가 그야말로 열심이다. 백제시대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해 일본 학문의 시조로 추앙받는 왕인박사의 이름을 딴 왕인학당이 고전의 향기와 배움의 열기로 가득 찼다.
"이번 강의부터는 본격적인 맹자집주(孟子集註) 강독에 앞서 명언명구(名言名句) 한마디씩 배우고 넘어갈까 합니다. 고전을 배우는데 한 가지라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으면 좋지않겠습니까?"
그러면서 강사는 칠판에 순자(荀子)의 '신도(臣道)' 편에 나오는 한 구절을 써 내려간다.
"傳曰 從道 不從君이라하니 此之謂也니라"
강사가 해석해보라는 얘기가 떨어지기도 전에 곧바로 수강생 모두가 척척 해설을 곁들인다.
"전해오는 말에, 도리를 따르되 군주를 따르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번에는 "신도 편의 구절을 보며 생각나는 얘기가 없느냐"는 강사의 물음에 수강생들이 잠시 망설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했다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2013년 10월 당시 윤석열은 일개 지청장으로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이처럼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는 어쩌면 이 말 한마디로 지금 대통령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가 박정희 또는 전두환 시대였다면 어찌됐을까요.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강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왕충은 중국 후한(後漢) 시대 사상가로, '논형(論衡)'은 말 그대로 '논리의 저울'을 뜻한다. 왕충은 이 '논형'을 저울로 삼아 세상의 시비와 진위에 대한 표준을 가늠하고자 했다. 유가 및 제자백가의 주장에 대한 긍정과 반박은 물론, 인간의 수명과 생사, 귀신의 실체, 서적의 산일, 자연과 천체, 숙명론 등 정치 사회 문화의 제반 문제에 대해 실증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을 가한 인물이다.) 고전강좌는 이처럼 맹자에서 순자, 왕충까지 넘나든다. 강사인 남헌 선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水盛勝火 火盛勝水 所由不在物在於人"
수강생들은 이번에도 그 뜻을 술술 풀어낸다.
"물이 성하면 불을 이기고 불이 성하면 물을 이긴다 연유한바 물에 있지 아니하고 사람에 있다"
이에 강사의 설명이 계속된다.
"많은 사람들은 당시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이 했던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순자가 신도 편에서 가르치려했던 것처럼 부정한 권력에 진정으로 당당하고 의로운 태도를 견지하겠다는 실천 의지가 담겨있다고 보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사람에 충성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은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강사는 한비자(韓非子)의 '군주의 세 가지 덕목', 즉 '법(法)', '술(術)', '세(勢)'를 통해 지금 윤 대통령을 평가한다.
"법은 말 그대로 법입니다. 법체계가 갖추어져 있고 이를 따르고는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그러나 술은 어떻습니까. 정치를 모르는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는 어떻습니까?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0.73% 차이로 간신히 당선되었으면서도 그 차이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문제이지요."(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나왔을 때 당시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두고두고 내 마음 속에 남을 것 같다"며 감동했고.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은 "부정한 권력 아래에서 진정으로 당당하고 의로운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라며, "비상식에 맞서 상식이 취해야 할 의연한 태도의 모범"이라고까지 극찬했다. 뿐만 아니라, 시인 안도현은 "사람에게 아부하고 있는 해바라기 정치검찰의 가슴을 후벼 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취임 100일도 채 되지 않아 무능과 독단, 그리고 사인(私人) 정치로 지지율 20%대로 떨어졌다.)
박약회(회장 최기욱)가 영암군의 후원을 받아 열고 있는 '2022년 인성교육학교 고전강좌'는 '논어, 맹자에서 선비의 멋을'이라는 주제로 지난 2019년부터 시작했다. 벌써 4년째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가 퍼지자 유튜브를 통해 강좌를 이어갔고,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조치가 완화됨에 따라 대면교육을 재개했다. 그동안 논어, 대학, 중용을 끝냈고, 한낮 폭염이 무색할 만큼 뜨거운 열기 속에 이번에는 맹자를 시작했다.
"우리 지역 사람들 한 분이라도 더 우리의 전통사상이 담긴 고전을 통해 마음공부를 했으면 하는 생각에 강좌를 시작했습니다. 마침 이 자리에 참석하신 문점영 전 영암군청 기획감사실장이 필요한 예산을 추경에 확보해주었고 본예산에 반영해주어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영암군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많은 성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약회 회장을 맡은 우죽(友竹) 최기욱(崔基昱) 전 영암향교 전교의 설명이다.
최기욱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본격적인 맹자집주(孟子集註) 강독이 시작된다. 양혜왕(梁惠王) 상편 7장이다. 수강생들의 낭송이 끝나자 강사인 남헌 선생의 유창한 해석이 이어진다.
"왕이 말하길 "그것이 이와 같이 심합니까?" 맹자께서 말하길 "오히려 더 심하니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기는 비록 물고기를 잡지 않으나 나중에 재앙이 없으려니와, 하시려는 것으로 하시고자 하는 것을 구하신다면, 마음과 힘을 다하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재앙이 있으리이다." 왕이 말하길 "제가 선생님의 말씀을 더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께서 말하길 "추나라 사람이 초나라 사람과 싸운다면 왕께서는 누가 이긴다고 생각하십니까?" 왕이 말하길 "초나라 사람이 이깁니다." 맹자께서 말하길 "그런즉, 작은 것은 절대로 큰 것을 대적하지 못 하며, 적은 것은 절대로 많은 수를 대적하지 못 함이며, 약한 것은 절대로 강한 것을 대적하지 못 함이니, 바다 안의 땅인 중국에 사방으로 천리가 되는 나라가 아홉인데, 제나라의 땅을 모으면 그 가운데 하나이니, 한 나라인 제나라를 가지고 나머지 여덟 나라들을 복속시키려 함이 추나라 사람이 초나라 사람을 대적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지금 왕께서 어진 정치를 베푸시사, 천하의 벼슬하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조정에 서고 싶게 하며, 밭을 가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들에서 밭을 갈고 싶게 하며, 행상과 좌상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저자에서 물건을 늘어놓고 싶게 하며, 나그네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길에 나가고 싶게 하시면, 천하에 그 임금을 미워하는 자들이 모두 왕에게 나아가 자기 임금을 헐뜯으리니 그것과 같이 한다면,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단숨에 해석을 끝낸 남헌 선생이 유명한 고사성어(故事成語) '연목구어(緣木求魚)'와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는 말의 어원을 상세하게 설명하자 수강생들은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영암읍에 산다는 한 수강생은 "여러 해 책보 들고 따라다니며 배우려하고 있다.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말했다. 망구의 한 수강생은 "나이 들어 배우려하니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면서도 누구보다도 강사의 한마디를 놓칠까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이다.
박약회가 열고 있는 '인성교육학교 고전강좌'는 셋째 주 일요일만 제외하고 매월 세 차례에 걸쳐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두 시간 동안 진행되고 있다. 누구나 참여해 고전을 통해 선비정신을 배울 수 있다.
"무더운 날씨에도 왕인박사의 고장답게 우리 조상들의 선비정신을 배우려는 군민들이 많아 힘이 납니다. 앞으로도 군민평생교육 차원에서 보다 많은 군민들이 고전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또 어린학생들과 청소년들에게도 고전을 통해 우리의 전통사상과 예의범절을 익힐 수 있는 강좌가 마련될 수 있도록 영암군이나 영암교육지원청이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맹자집주 강독을 맡은 남헌 황형주 선생의 바람이다.
이춘성 기자 ya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