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향교의 유래와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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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영암향교의 유래와 구조

1420년 건립 후 잦은 소실 등 수난 겪은 儒學의 산실
좌학우묘(左學右廟) 형태 전남남도 문화재자료 제126호

영암향교(전교 최금렬)가 오는 9월 10일 공기(孔紀) 2575년 추기 석전제(釋奠祭)를 앞두고 바야흐로 준비가 한창이다. 이번 석전제 봉행은 국격과 교권이 추락하는 작금의 현실을 직시하고, 유학(儒學) 전통을 올바로 계승 발전시키는 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유학의 올바른 전승에 매진하는 산 현장이자 추기 석전제 준비가 한창인 영암향교를 찾아 그 면면을 수회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註>


영암향교는 1420년(세종 2년)에 유림(儒林)들에 의해 역참(驛站)이 있었던 영보역 부근(현 공설운동장 자리)에 처음 세워졌다. 그러나 1555년 을묘왜변(乙卯倭變)과 임진왜란(壬辰倭亂)을 겪으며 모두 소실(燒失)돼, 1603년(선조 36년)에 현재 자리인 영암읍 교동리로 이건됐다.

1739년에 문묘(文廟)를 중수했고, 1874년에는 한 차례 더 중수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보통학교 임시교사로 사용되다가 1918년 화재로 전소됐다. 1922년에 명륜당을 중건했으나, 다시 6·25 전쟁 때 전소됐다. 그 뒤 1951년에 대성전, 1963년에 양사재, 1969년에 명륜당, 1971년에 외삼문, 1976년에 내삼문, 1986년에 전사청 등이 중건·중수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암향교는 왼쪽에는 강학 공간, 오른쪽에는 제향 공간을 둔 좌학우묘(左學右廟)의 형태를 갖고 있다. 건물 배치를 보면, 입구에 누각이 있고, 현유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과 학문 연마와 탐구의 공간인 명륜당, 학생들이 숙식하며 잠자는 양사재, 내삼문과 외삼문, 전사청 등이 자리한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고,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양사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에는 송조2현(宋朝二賢)과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30명의 교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 이후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 석전 봉행과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한다. 영암향교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6호로도 지정돼 있다.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승우 기자 yanews@hanmail.net
키워드 : 영암향교 | 최금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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