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양심, 국민영웅 金大中의 逝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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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양심, 국민영웅 金大中의 逝去

도산스님 광주대각사 주지

2009년 8월 18일 오후 1시43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 한국 민주화의 대스타 우리들의 통일영웅 후광 김대중 선생이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85세의 일기를 끝으로 서거하였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목포 하의도 섬에서 1924년 일제 강점기, 섬소년에서 목포로 유학, 청와대로 입성, 한국 제15대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의 일생은 한마디로 인생 파노라마 그 자체였다.
그가 지니고 있던 모든 지식과 경륜은 1971년 첫 대권 도전에서 1997년 4수 끝에 최고 통치권자에 오르기까지 36년간의 대권 도전사에서 알 수 있듯이 좌절과 재기 즉 망명, 투옥, 가택연금으로 점철된 암울한 시기에 대부분 형성된 것 들이다.
그의 들꽃 같은 정치인생 50년을 마감하고 서거한 그의 인생궤적에는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이라든지 “현미경처럼 치밀하게 보고 망원경처럼 멀리 봐야 한다”라거나 “정치는 살아 꿈틀거리는 생물과도 같다”라는 등의 발언은 당시 그가 체험했던 한국 현대 정치사의 귀감으로써 지금까지도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말들이다.
1992년 대선운동 과정에서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통일로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른다”는 감상적 글도 남겼었다.
또한 그는 1997년 IMF로 말미암아 ‘준비된 경제 대통령’이 되었고 4수의 도전 끝에 청와대 주인이 된 뒤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햇볕정책’, ‘제2의 건국운동’등으로 자신의 통치철학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후광(後廣)선생을 일러 ‘정치9단’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기도 했는데 그가 1970년대 야당 지도자 시절부터 줄기차게 주장해온 ‘남북연합→연방제→통일국가’의 3단계 통일 패러다임은 그의 오래된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이룩된 것이다. 남북정상회의를 최고의결기구로 하는 남북연합을 먼저 만들고 다음 남북한의 평화 분위기가 성숙되면 연방제를 만든 뒤 통일국가를 이룬다는 내용이다.
그의 이러한 통일정책은 재임 기간 중 몇 가지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결국 ‘햇볕정책’으로 실현되어 꿈에 그리던 남북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으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공로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그의 이러한 인동초(忍冬草)와 같은 불굴의 정신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를 괴롭혔던 전통이라는 이름의 갑옷으로 무장한 권위주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의 독선과 폭력으로부터 굴하지 않고 꾸준히 투쟁해온 그의 놀라운 비폭력 혼불, 그리고 그를 끝까지 지지하고 따르던 몇몇 의리 있는 사람들, 동교동의 안주인 이희호 여사,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5·18영령들…. 이 모든 요인들이 하나로 그의 가슴에서, 영혼에서 꺼지지 않는 등불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올 한해 2009년은 참으로 잔인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우리는 민주화의 영웅 두 지도자를 잃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은 우리 한국정치사에 결코 잃어버린 10년이 아닌 새로 써야할 빛나는 영광의 한국정치사가 될 것을 확신한다.
우리는 후광선생의 영전에 국화 한 송이만으로 이별을 고할 수는 없다. 그가 못다 이룬 통일과업과 동서간의 지역 갈등, 계층 간의 불화를 일소하고 소통과 화합으로 새로운 햇볕정신 운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남은 자들이 해야 할 몫이 아닐까 한다.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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