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림(鳩林), 비둘기 숲에서 도선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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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鳩林), 비둘기 숲에서 도선을 만나다

문화관광해설사에게 듣는 내고향 문화유산

여기서 도선비기(道詵秘記)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창업한 왕건이 고려를 세우는 데 중요한 도움을 준 사람 가운데 한사람이 바로 도선국사다. 고려사 첫머리에 보면 왕건이 고려를 세우게 된 내력에 대해서 적고 있는데 여기에도 도선국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도선은 왕건의 아버지에게 왕건이 태어날 집터를 정해주었다고 한다. “내년에 귀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그 아이의 이름을 왕건이라고 지으시오. “ 이렇게 왕건의 출생과 고려건국을 예언하는 그런 내용을 담은 책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이 예언 때문에 태조 이후의 고려왕들은 그를 극진히 존경했다. 태조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민간신앙도 보호하고 육성하면서, 동시에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도선비기에 관해서도 대단한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그는 불교신앙에서 오는 가호의 힘과 함께 참위설에서 얻어지는 힘에 의지함으로써 그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달성하려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왕건이 17세 때 도선은 직접 송악으로 와서 왕건을 가르쳤다고 한다. 군대를 지휘하거나 진을 치고(출사치진:出師置陣), 유리한 지형과 적당한 시기를 선택하는 방법(지리천시지법:地利天時之法), 산천의 형세를 파악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법(망질산천 감통보우지법:望秩山川 感通保佑之法)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런 내용대로라면 도선국사는 왕건의 출생부터 교육까지 전 과정을 도맡았던 스승이라고 볼수 있다. 그야 말로 삼국을 통일해 고려를 건국하는데 왕건을 도운 일등공신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도선을 낳은 월출산은 어떠한가?
조선 명종 때의 시인 김극기는 “월출산의 많은 기이한 모습을 실컷 들었거니, 흐림과 맑음 추위와 더위가 서로 알맞도다. 푸른 낭떠러지와 자색의 골짜기에는 만 떨기가 솟고, 첩첩한 산봉우리는 하늘을 뚫어 웅장하고 기이함을 자랑하누나. 하늘이 영험한 자라로 하여금 세 개의 섬을 짊어지고, 지상으로 황홀하게 옮겨 놓게 했구나” 하고 월출산을 노래했다. 명산은 현인을 낳고 현인은 세상에 등불을 밝힌다.
영암은 월출산이고 월출산이 영암이다. 고을 이름도 이 산에서 비롯됐다. 동국여지승람은 그 내력을 이렇게 전한다.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동석이 있다. 특히 층암(層巖) 위에 서있는 세 돌은 높이가 한 길 남짓하고 둘레가 열 아름이나 되는데, 서쪽으로는 산마루에 붙어 있고, 동쪽으로는 절벽에 임해 있다. 그 무게는 비록 천백 인을 동원해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으나, 한 사람이 움직이면 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암(靈巖)이라 칭했다. 군의 이름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구정봉 아래의 세 돌 때문에 큰 인물이 나는데, 이를 시기한 중국 사람들이 바위를 떨어뜨렸다. 그 중 하나가 스스로 옛 자리에 올라갔다. 이런 까닭으로 신령스러운 바위, 즉 영암이라 하고 고을 이름으로 삼았다는 얘기가 전한다. 영암 앞바다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일본으로 전하는 국제 항구의 역할을 하였고 월출산의 기암괴석들은 항해의 푯대가 되고 등대가 되었다.월출산은 멀리서 보아도 좋은 산이고, 들어가 보아도 아름다운 산이고, 기대어 살아도 편안한 산이다. 영암이 월출산이고 월출산이 영암이다. 산과 사람이 혈육처럼 어우러져서 더욱 아름다운 산이 월출산이다
도선국사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려 했는가?
도선국사가 35년 거주하였다는 광양 옥룡사가 도선의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는곳이다.
전남도기념물 제12호(광양 백계산 동백림)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12월 17일 천연기념물 제489호로 변경되었다. 백운산의 한 지맥인 백계산 남쪽 광양 옥룡사 주변의 숲으로, 사적 제407호 광양 옥룡사지 일원 내에 있다. 도선국사가 864년 옥룡사를 창건할 때 땅의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사시사철 푸른 동백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이렇듯 도선은 피폐하고 쇠락한 우리의 버려진 땅을 찾아 그곳에 나무를 심고 흙을 돋우고 때로는 바위를 옮겨놓아 흉지를 길지로 만들어 놓은 풍수의 아버지다.
수령 100년 이상의 동백나무 약 7,000여 그루 정도가 사찰 주변에 넓은 군락을 형성, 백계산 자락을 빽빽하게 덮는다. 나무높이는 6-10m, 가슴높이 줄기둘레 평균 50.2cm 정도로 각각의 동백나무가 규격이 크며 생육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옥룡사의 동백나무숲은 그 유서도 깊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남부지방 사찰림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또한 동백나무만으로 조성된 순림으로 면적도 무척 넓어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며 학술적 가치도 높은 숲이다.
풍수지리의 아버지 도선은 비보(裨補)란 철학으로 인간이 자연환경과 상생 조화 관계를 맺으려 노력했다. 비보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풍수 전통이자, 자연과 인간이 이루는 유기적 통합생명의 상호조절원리이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땅과 사람(天地人)을 한 몸으로 생각해 허하고 결함이 있으면 인위적으로 명당을 형성하려 노력해왔다.
도선국사는 “사람이 만약 병이 들어 위급할 경우 곧장 혈맥을 찾아 침을 놓거나 뜸을 뜨면 곧 병이 낫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천의 병도 역시 그러하니 낮은곳은 흙으로 체우고 바람이 센곳은 방풍림을 심고 햇빛이 안든곳은 나무를 베고 빛이 강한곳은 나무그늘을 만들어 특별히 망자를 위한 비보뿐 아니라 생명을 틔우는 대지로서도 손색이 없는 땅을 만들어 간지”라 이름하여 말하기를 비보(裨補)라고 하였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돈이없는 서민이라 하더라도 조금 보완을 하면 조상의 묘터를 길지로 만들어 갈수 있는 풍수 철학이었다.
도선국사는 땅을 어머니로 생각하고 하늘을 아버지로 생각했다. 필자 역시 도선의 이러한 자연 존엄사상이 너무나 큰 감동으로 다가와서 도선국사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었다. 작금의 세태를 보면 묘를 쓰는 길지뿐만 아니라 땅을 투기의 대상으로 삼고 거래되고 있는 현실이며 우리의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오염물질로 신음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선국사께서 지하에 계신다면 땅을 치며 통곡을 할 것이다. 일찍이 도선국사의 국토사랑, 재력가나 없는 사람이나 다같이 죽어서는 평등한 세상을 염원하여 비보풍수를 만들었을 것인즉 21C를 살아가는 우리는 도선국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국토를 사랑하고 자연을 잘 보존하여 우리들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것이다. 김이호/영암문화관광해설사
영암군민신문 www.y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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